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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떠나야 할 때를 안다는 것

등록 2018.04.13 21:45

재작년 존 키 뉴질랜드 총리가 갑자기 물러났습니다. 사임 이유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수많은 밤과 주말을 홀로 보냈고, 두 아이는 엄청난 사생활 침해에 시달렸습니다."

더 이상 가족의 고통을 두고 볼 수 없었다는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 절정의 정치인이 그것도 쉰다섯 살 한창 나이에 정계 은퇴를 선언한 것에 전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가 하면 메이저 전 영국 총리는 정계를 은퇴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정치를 위해 가족이 희생했으니, 이젠 정치가 양보할 때입니다." 

맥아더를 비롯해 수많은 영웅들이 멋진 퇴장의 변(辯)을 역사에 남겼지만,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말처럼 아름다운 귀거래사(歸去來辭)도 드물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꼽혀온 마흔여덟 살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은퇴를 선언해 미국 정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제가 연임한다면 세 아이는 나를 ‘주말 아빠’로만 기억할 겁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겠습니다."

그는 3년 전 하원의장 제의를 받았을 때도 "가족과의 시간만은 포기하지 않겠다"며 사양했습니다. 의장이 된 뒤에도 주말이면 비행기로 3시간도 더 걸리는 위스콘신의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곧 613지방선거가 치러집니다. 결기에 찬 출사표가 쏟아지고 있지만 아름다운 귀거래사는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존 키 뉴질랜드 총리가 물러나면서 했던 말을 다시 들어 봅니다.

"그간 물러날 때를 놓친 지도자를 숱하게 봤습니다. 제겐 지금이 떠날 때입니다."

정치인이 스스로 떠날 때를 선택한다는 건 분수를 안다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남이 등 떠밀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돌아보면 답은 나오기 마련이지요.

자신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온 사회가 발칵 뒤집혔는데도 나만 그런 게 아니라며 버티고 있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얼굴이 유난히 폴 라이언 미 하원의장과 겹쳐 보입니다. 4월 13일 앵커의 시선은 '떠나야 할 때를 안다는 것'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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