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통일뉴스9

[포커스] 남북 분단 역사의 시작과 끝, 판문점

등록 2018.04.24 21:09

수정 2018.04.24 22:24

[앵커]
사흘 뒤 남북 정상이 만나게 될 판문점은 서울에서 60km, 개성에서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부터 최근 북한 병사 귀순 사건까지 판문점은 분단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판문점에 포커스를 맞춰봅니다.

 

[리포트]
농사짓는 사람들 뒤로 천막이 보입니다. 휴전 논의를 위해 임시 막사가 차려졌던 널문리 주막마을. 중국군이 한자로 표기하며 이후 '판문점'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판문점은 유엔사와 북한군의 공동경비구역으로 지정됩니다.

국립영화제작소
"3년 간에 걸친 한국전쟁 휴전협정이 조인되자 판문점은 휴전을 낳은 산실로써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난 것이다."

줄줄이 다리를 건너는 포로들.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서 이뤄진 포로 교환 장면입니다. 한 번 건너면 돌아올 수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1971년, 남북의 첫 대화가 시작된 곳도 판문점입니다.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창문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기자들의 모습에서 당시 취재 열기가 느껴집니다.

대한뉴스
"분단 이후 26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공식 남북 대화였다."

이후 360 차례의 남북 대화가 판문점에서 이뤄졌습니다.

1998년엔 정주영 전 현대회장이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갔습니다. 소 500마리를 실은 트럭 50대가 군사분계선을 넘는데만 15분이 걸렸습니다.

정주영 / 1998년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판문점이 항상 대화와 협력의 공간이었던 건 아닙니다. 1976년 북측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 인근에서 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대한뉴스
"30여명의 북한괴뢰군이 자동차로 몰려와서 도끼와 곡괭이를 마구 휘둘러.."

이 사건을 계기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폐쇄됐습니다. 대신 북한이 사흘 만에 지었다는 '72시간 다리'가 생겼죠.

지난해 11월, 북한군 오청성이 귀순해 넘어온 곳이 바로 이 '72시간 다리'입니다. 도끼만행 사건 이후 판문점 회담장 사이엔 높이 15cm 짜리 콘크리트 턱이 생겼습니다.

사흘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콘크리트 턱을 걸어서 넘어옵니다.

개성시 판문군 판문점리.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두 주소가 맞닿은 판문점이 또 다른 역사의 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뉴스9 포커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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