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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김종필의 정치

등록 2018.06.25 21:53

수정 2018.07.10 23:02

연꽃축제를 앞둔 부여 궁남지 포룡정에 연꽃 조형물이 설치됐습니다. 서동과 선화공주 설화가 깃든 이 정자는 1971년 세워졌는데 고 김종필 당시 총리가 현판을 썼습니다. 청양의 장곡사 500년 승방에도 그가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김 전 총리는 어려서부터 한학과 서예를 배워 붓글씨가 빼어났습니다. 워낙 많은 휘호를 남겼는데도 경매시장에서 3백만원에서 5백만원에 낙찰된다고 합니다. 마흔 줄에 시작한 서양화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60년대 미국에 머물 때는 보스턴 심포니의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을 들으러 350km를 달려갔다고 했습니다. 그는 솔로보다 협주곡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협주곡이 악기와 오케스트라의 대화로 이뤄지듯 인간사회가 염원하는 것이 대화가 이루는 하모니다. 내가 협주곡을 동경하는 것은, 정치에서 이룩해보려는 이상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인생에는 빛과 그림자, 영광과 오욕이 엇갈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낭만과 풍류, 해학을 아는 마지막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독서와 문학을 사랑했고, 아코디언과 만돌린과 피아노를 다뤘으며, 검도와 바둑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치에서도 협주곡 같은 화음을 추구했습니다. 정치적 극한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여백의 정치라는 말을 즐겨 썼습니다. 쿠데타의 주역이라는 오명이 평생 그를 따라 다녔지만 삭막한 우리 정치에 숨구멍이 되어준 흔치 않은 정치인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 그 자체였으며 그를 향한 세상의 평가 역시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극단과 극단이 부딪치는 대결의 시대, 아량과 배려가 사라지고 관용이 메말라가는 사회, 다른 것과 틀린 것이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 영욕의 정치인 김종필은 이제 떠났습니다. 하지만 정치가 더 험악해질수록, 정치인의 입이 더 거칠어질수록, 그가 지향했던 정치를 그리워 할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6월 25일 앵커의 시선은 '김종필의 정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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