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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어느 가족'…이 가족의 정체를 모르겠다

등록 2018.07.31 18:17

수정 2018.07.31 18:52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팬들에게 '어느 가족'은 익숙한 스토리다. 방치된 아이들을 다룬다는 점에선 '아무도 모른다'를, 낳은 정 기른 정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닮았다. 그런데 두 수작의 접점이 '어느 가족'인지 묻는다면, 답을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느 가족'은 가족 영화의 결정(結晶)을 만들기 위해, 기능적으로 가공한 이야기에 가깝다.

 

[영화리뷰] '어느 가족'…이 가족의 정체를 모르겠다
 


'어느 가족'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불균질성이다. 영화 초반은 '보여주기'가, 후반은 '말해주기'가 지배한다. 초반부, 영화는 가족 구성원들이 어떻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됐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들의 유대가 무엇에 기반한 건지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준다. 노부요는 린의 과거를 추궁하는 대신 끌어안고, 오사무와 노부요는 몸을 섞으며 신뢰를 확인한다. 살과 살이 맞닿는 장면에선 어떤 물성마저 느껴진다. 관객 역시 이들의 유대를 몸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다.

보여주기에 집중하던 영화는 후반으로 가면서 불필요하게 친절해진다. 마지막 취조신. 고레에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로 모든 걸 설명한다. 작심한 듯 윤리적(인 것 같지만 공허한) 질문을 쏟아내는 이 관계자 앞에서, 자리를 빼앗긴 관객은 망연해진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친절해진 영화가 정작 해야 할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잘리면서까지 린을 보호했던 노부요는, 후반에 가서 그녀를 가차없이 포기한다. 하지만 관객은 그 동인을 알 수 없다.

 

[영화리뷰] '어느 가족'…이 가족의 정체를 모르겠다
 


영화가 할머니를 대하는 방식도 의아하다. 초반부, 가족들은 무심하지만 따뜻하게 할머니를 대한다.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장면,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장면 등은 이 가족에게 혈연 이상의 끈끈한 무언가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후반에 가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오사무와 노부요는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긴커녕 그녀가 남긴 마지막 돈까지 망설임 없이 써버린다. 이 대목에선 가족의 정체성에 의구심마저 든다. 이들에게 할머니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이 영화의 가족애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만 기능하는 것일까.

영화가 어린 쇼타와 린에게 모든 짐을 지운다는 비판이 있지만, 진짜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문제는 이 영화의 결말이 기능적이고, 그래서 상투적 타협에 가까워 보인다는 데 있다. '어느 가족'이 고레에다 세계의 결정판이 아닌, 전작들의 장점만 취하려 한 소품으로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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