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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스키폴 공항의 파리

등록 2018.11.07 21:43

수정 2018.11.07 21:47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20년 전 인기를 끈 어느 맥주 광고 문굽니다. 이 문구는 전국의 공중화장실 소변기 위로 퍼져 나갔습니다. "한 발 앞으로 다가서라"는 명령조 경고문보다, 사람들이 미소 지으며 따르게 하는 유머의 힘이 빛을 발했지요.

1990년대 초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은 화장실 남성 소변기에 파리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밖으로 흘리는 소변이 80%나 줄었고, 따라서 화장실 청소비용도 절감됐다고 합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건 거센 바람이 아니라 따스한 햇살이라는 말도 바로 이런 경우 쓰는 말입니다.

정부-여당이 이른바 '협력 이익 공유제'라는 걸 법제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노력해 올린 이익을 나눠 갖도록 하자는 겁니다. 그 취지만 보면 반대할 명분도 사람도 있을 리 없습니다. 선진국 대기업 중에도 협력회사와 계약을 맺고 이익을 분배하는 데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을 자율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법으로 개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정부는 강제가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 분위기에서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을 기업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박용만 상의 회장이 "상당수의 규제는 기본권을 침해할 정도"라고 한 것만 봐도 지금 기업인들의 답답함이 얼마나 큰 지 짐작이 어렵지 않습니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탈러 교수는 행동경제학 이론 '너지’로 유명합니다. 강제와 규제, 지시에 의한 억압보다, 팔꿈치로 슬쩍 찌르듯 부드럽고 간접적인 유도가 효과적이라는 이론이지요. 하지만 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성장, 소득, 고용 모두 시장에만 맡겨 둘 수 없다는 겁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이제는 기업의 이익 나누는 문제에까지 미친 듯 합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인 것인가는 탈러 교수가 '너지' 이론의 대표적 사례로 꼽은 스키폴 공항의 파리가 이미 입증한 바 있습니다. 우리 경제라는 소변기에 갖가지 규제와 지시, 경고문을 잔뜩 붙여 놓은 형국은 아닌지 돌아볼입니다.

11월 7일 앵커의 시선은 '스키폴 공항의 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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