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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등록 2018.11.16 21:44

수정 2018.11.16 21:55

몇년 전 고등학교 동창생 세 명이 쓴 책에 이런 시가 나옵니다. "고3이라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고3이라고 해서 재미를 버렸겠는가."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를 슬쩍 비틀어, 아플 자유마저 없는 고3 처지를 재치있게 담아냈습니다.

더 재미난 건 윤동주 '서시'의 패러디였습니다. "수능 날까지 성적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식후에 이는 졸림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합격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출제되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시험을 치러 가야겠다/ 오늘밤에도 재수가 꿈에 스치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서시' 한 구절이 2005년 수능 모의고사에 등장했습니다. 국어문제가 아니라 수험생이 베껴 쓰게 해 필적으로 본인 확인을 하려는 부정 방지책이었지요. 한 해 전 휴대전화를 이용한 대규모 부정이 적발된 뒤 도입한 것이어서 '부끄럼 없기'라는 시구를 고른 듯합니다. 

그 뒤로 해마다 필적 확인란에 시 한 줄이 인용됐습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고 넓어진다" 자음과 모음이 알맞게 섞여 필적 확인이 쉽고, 수험생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구절들입니다. 그리고 어제 수능에서는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는 시구가 올랐습니다. 긴장과 떨림으로 잔뜩 타 들었을 어린 가슴들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푸근하게 다독이는 명 구절입니다.

고3 아이들이 갇혀 살아온 대입 감옥의 형기가 어제로 일단락됐습니다. 옥바라지하듯 갖은 눈치 살피며 챙겨온 부모들도 큰 짐 하나 내려놓았습니다. 점수의 높고 낮음을 따질 것 없이 이 혹독한 대사 치러낸 것만 해도 모두가 장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하나하나가 세상에서 유일하고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안쓰럽고 대견한 아이들에게 위로 한마디 건넵니다. 그동안 잘 견뎌왔고 고생 많았습니다.

11월 16일 앵커의 시선은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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