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통일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김정은의 남행열차 대장정

등록 2019.02.26 21:44

수정 2019.02.26 21:48

"나는 만수를 누릴 군주로 너를 결정했다. 너는 황제가 될지어다…"

청나라 말기 서태후는 세 명의 황제를 쥐고 흔들며 절대적 권력과 호사를 누렸습니다. 여행을 할 때면 이렇게 꽃으로 장식하고 금칠을 한 전용열차를 탔지요. 만주까지 850km를 갈 때는 객차 네 칸을 주방으로 꾸미고 화덕 쉰 개를 들였습니다. 요리사 백명이 음식을 장만할 때마다 열차를 멈추는 바람에 철도가 마비되곤 했다고 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4천5백km 열차여행 끝에 베트남에 도착했습니다. 전용열차 시속이 육칠십km밖에 안 돼 다른 열차 운행이 잇따라 취소되거나 연착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버지 김정일이 2001년 전용열차로 모스크바를 방문하면서 24일에 걸쳐 4만km를 왕복했던 데 비하면 나은 편이긴 합니다.

러시아 유력 일간지가 김정일 열차를 '공산주의의 망령' 이라고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지만 북한 지도자의 외국 방문 여정이 이번처럼 세계의 눈길을 끈 적도 없었던 듯합니다. 싱가포르 회담 때는 중국 비행기를 빌려 타더니, 이제는 비행기로 네 시간 갈 길을 열차로 사흘에 갔으니까 말입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벌어진 19세기 풍경이 오늘 북한이 어떤 체제이고 형편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줬습니다. 김 위원장이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내 아이들이 평생 핵을 이고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는 증언이 엊그제 나왔습니다. 또 하나 겉치레 말일 수도 있지만 다른 어떤 언급보다 울림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부모가 자식까지 걸었다면 뭔가 비장함은 있었을 테니까요.

김 위원장이 꿈꾸는 아이들의 미래가 있다면 길은 완전한 핵 포기뿐입니다. 그 길을 과감히 택한다면 60시간에 걸친 열차 대장정은 '공산주의의 망령'이 아닌 '역사적 결단'으로 평가될 겁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당한 명분을 주면서 제재를 풀어볼 생각이라면 김정은의 꿈은 그저 꿈에 그치게 될 것입니다.

2월 26일 앵커의 시선은 '김정은의 남행열차 대장정'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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