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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김학의 수사' 뒤 좌천된 경찰에게 아내가 한 말은?

등록 2019.03.22 09:05

수정 2019.04.11 10:58

[취재후 Talk] '김학의 수사' 뒤 좌천된 경찰에게 아내가 한 말은?

2013년 3월 김학의 법무부차관이 과천 법무부청사를 나와 퇴근하고있다. /조선일보 DB

<한직으로 물러난 '김학의 사건' 수사팀장>

"나쁜 사람 수갑도 못 채우는 경찰이 무슨 경찰이야?"

경찰청 수사기획과 킥스(KICS) 운영계장. 범죄 통계를 담당하는 자리입니다. 현장에서 뛰며 고생하는 보직이 아니라 본인은 몰라도 가족은 좋아할 만도 했을텐데 그의 아내는 저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정말 영화에서나 보던 경찰 아내의 대사 아닌가요?

'김학의 성접대 사건'으로 알려진 수사를 이끌었던 A 경정 얘기입니다. 물론, '킥스계장'도 없어선 안될 중요 보직이긴 하지만 경력 대부분을 일선 수사 현장에서 뛰어온 그에겐 소위 말하는 '좌천'임이 분명했습니다.

<수사 도중 교체된 경찰 수뇌부>

경찰이 '김학의 성접대 사건'을 공식 수사하기로 한 건 2013년 3월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달 실시된 경찰관 경무관급·총경급 인사에서 '김학의 사건' 수사 라인인 수사국장과 수사기획관, 특수수사과장이 모두 교체됐습니다. 특히 수사기획관은 불과 6개월 만에 단행된 이례적인 교체 인사였습니다. 수사팀으로선 무언의 압박으로 느껴졌을 겁니다. 수사팀장이었던 A 경정을 직접 만날 수 있었던 건 그 즈음이었습니다.

<막무가내로 만난 수사팀장 "녹음 안 하죠?">

당시 경찰청을 출입하고 있던 저는 A 경정을 만나려고 필사적이었습니다. 전화가 되면 편했겠지만 수사중에 원래 경찰들은 기자 전화를 거의 안 받습니다. 게다가 온 세상이 이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터라 수사팀 사무실은 접근조차 통제됐습니다. 그러다 꾀가 떠오르더군요. A 경정의 차 앞에 제 차를 세워놓았습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가둬서 제 차를 빼지 않으면 나갈 수 없게 말이죠. 밤 11시쯤,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차 좀 빼달라고. 차를 빼주는 척하다가 얼른 A 경정의 차에 올라탔습니다. 내리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버텼습니다.

"나는 집이 (경기도) 구리라."
- 가세요. 구리에서 택시 타고 올게요.


"미치겠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포기한 듯 차를 운전하기 시작한 A 경정이 물었습니다.

"녹음하고 그러시는 거.."
- 아니에요. 그런 짓 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녹음했습니다. 물론, 기록용이었고 그래서 그 날 대화는 아주 구체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성폭행만 적용한 경찰…그나마 빠진 검찰 수사>

그 날 A 경정은 수사 내용에 대해선 대체로 함구했지만 수사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는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지금과 달리 당시 상당수 언론은 '경찰이 의혹만 가지고 뛰어들었다'느니 '표적 수사'라느니 하는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검사장 출신 전 법무차관이 포함된 사건을 검찰이 어떻게 처리할지도 의문이었고, 경찰 수뇌부 사이에서조차 괜히 건드린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는 분위기였으니까요.

실제로 검찰은 경찰 수사에 번번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로 대신합니다.

['우여곡절' 성접대 의혹 수사/2013. 7. 18]
https://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8/2013071890178.html

2013년 7월 3일. 우여곡절 끝에 경찰은 김학의 전 법무차관에게 특수성폭행 혐의를 적용해 검찰로 송치했습니다. 대가성 여부가 핵심이었던 알선수뢰 등 다른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넉 달 뒤 나온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선 그나마 특수성폭행마저 무혐의 처리가 됐습니다. 2013년 11월 11일,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검찰의 브리핑 내용입니다.

- 김학의 전 차관이 윤중천 씨 모른다고 했는데 그 입장 변함 없나?
"네, 변함 없었습니다."

- 사실이라고 보나?
"수사결과 외에 나머지 벗어난 부분 얘긴…. 양해해주십시오."

- 무혐의 처분 근거 중 가장 큰 게 '여성들의 진술이 믿을만하지 않다'인데?
"피해자의 말이 신빙성이 있어야 기소할 수 있습니다."

- 별장 동영상에 김 전 차관이 등장하나?
"동영상 내용은 범죄 사실 유무 입증과 전혀 상관 없는 부분이라 말씀드리기 적절치 않습니다."


이날 기자들은 여러 차례 동영상에 김 전 차관이 등장하는지 물었지만 검찰은 답변을 피했습니다. 끝내 '아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김 전 차관이 영상에 나온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수사가 끝난 뒤 A 경정은 '비수사 파트'로 밀려났습니다. 진급 심사에서도 연거푸 떨어졌죠. 그와 함께 수사했던 팀원들 역시 '한직'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경찰청 범죄정보과에서 근무했던 한 경찰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김학의 사건 이후 '그 XX 수사 못하게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실제로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도 안 맡으려는 수사에 뛰어든 '이상한' 경찰관>

A 경정은 원래 경찰청 범죄정보과 소속이었습니다. 수사로 이어질 만한 각종 정보들을 수집한 뒤 수사팀에 넘겨주는 역할을 하는 부서입니다. 일반적인 경우 특수수사과가 범죄정보를 넘겨받아 수사를 하게 되지요. 하지만 '김학의 사건'의 경우엔 A 경정과 그의 팀원들이 특수수사과에 파견을 나와 직접 수사를 했습니다. 사건이 워낙 부담스러워서 당시 특수수사과에선 아무도 맡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 경정을 처음 봤던 날, 차 안에서 그는 친구로 추정되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실 그러면 안됐지만 당시 통화 내용까지 녹음으로 남아있더군요. 몰래 엿들었던 그 대화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걱정하지마. 잘 될거야. 내가 (옷 벗고) 나가면 잘 해준다며. 하하하. 2년 더 하면 연금이라도 타는데. (연금 타기 위한 근속 연한이 되는 게) 내년 3월이야? 그럼 내년 3월까지는 버텨야지. 하여간 그런 생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잘 될 거야."

<'비전지적' 기자가 본 '김학의 사건'>

아내에게 '나쁜 사람 못 잡는다'고 타박 들으며 한창 진급에서 '물'을 먹던 시기, 사석에서 만난 A 경정에게 진급하면 어떤 부서로 가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광수대(광역수사대) 가서 나쁜 사람 더 많이 잡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아내에 그 남편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그의 진급 마지막 연차였던 2017년, A 경정은 결국 총경으로 진급했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최근 장자연·버닝썬과 함께 김학의 전 차관의 이름이 다시 세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물론 기자가 모든 사실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취재 능력의 한계 때문이죠. 다만 저를 포함한 저희 취재팀은 경찰이 사건을 공식 수사하기 전부터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경찰 수사 기간 동안엔 경찰청을, 검찰 수사 기간 동안엔 서울중앙지검을 출입하며 '김학의 사건'의 시작과 끝을 지켜봤습니다. '비전지적 기자시점'이라는 것을 전제하면 적어도 '김학의 사건'에 있어서 경찰 수뇌부는 용기가 부족했고, 검찰은 정의롭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몸 안사리고 수사에 뛰어들었던 '이상한 경찰관'이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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