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체

[취재후 Talk] "성장률이 마이너스요? 진짜요?"

등록 2019.05.02 08:02

수정 2019.05.02 08:28

1분기 GDP 증가율 발표를 하루 앞두고 선배로부터 급하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내일 수치, 아침뉴스에 바로 전화연결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

증가율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을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었습니다. 지난해 연간 GDP 발표 때에도 없던 지시라 긴장이 됐습니다. 그러면서도 '에이, 별 일 있겠어?' 라고 내심 생각했습니다. 전문가들도 0%대 초반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높았던 기저효과(base effect)를 감안하더라도 말입니다.

(지난해 4분기는 정부의 일회성 재정 지출 확대에 힘입어 전분기 대비 1.0% 성장했습니다. 시장 예상을 뛰어 넘는 '깜짝 실적'이었습니다. 이 덕분에 낮춰 잡은 한은의 연간 성장률 전망치 2.7%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후 Talk] '성장률이 마이너스요? 진짜요?'
지난해 연간 GDP를 발표하는 박양수 한은 경제통계국장



■ 낯선 '감소' 라는 글자

한국은행 출입 기자들이 가장 바쁜 날은 통화정책방향을 발표하는 날(금융통화위원들이 모여 금리를 결정하는 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날 만큼이나 일찍 오전 7시에 한국은행에 도착했습니다. 출입구 앞에 수북이 쌓인 보도자료 가운데 한 부를 들었습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대비 0.3%….'

다시 읽어봤습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대비 0.3% 감소'

아, 0.3% 뒤에 붙은 '감소'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성장'이 아닌 '감소' 였습니다. 직전 분기인 작년 4분기 대비 마이너스 0.3% 성장, 역(逆)성장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먼저 도착한 기자들은 일찍이 분주하게 전화를 돌리거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이후에 도착해서 자료를 보는 기자들 표정을 보고 있으니 제가 처음 자료를 받아들었을 때의 표정이 눈에 그려졌습니다. 급하게 경제통계국에 전화를 하고 원고를 작성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난 2008년 4분기 -3.3%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습니다. 믿기 힘들었습니다.

 

[취재후 Talk] '성장률이 마이너스요? 진짜요?'
한은 "1분기 성장률 -0.3%"



■ 민간 부진을 떠받치는 정부


잠시 뒤 9시 설명회에서 한국은행은 이번 '성장률 쇼크'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연말부터 수출 둔화로 경제성장 모멘텀이 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해 4분기 대비 정부 부문의 성장기여도가 줄어드는 기저효과로 1분기 GDP 성장률이 시장 예상보다 낮았다…." 

지난해 4분기에는 정부 지출 덕에 성장률이 높게 나왔고 이번엔 정부 지출이 집행되지 않아서 낮게 나왔다는 뜻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경제의 건강이 이미 '재정 지출'이라는 링거액을 넣지 않으면 당장 열이 오르고 염증이 생기는 허약한 상태가 됐다는 진단으로 느껴졌습니다.

몸 스스로의 건강 활동 (민간 부문 동력)이 그만큼 부진해졌다는 방증이겠지요. 수출, 투자를 비롯해 지표들이 죄다 좋지 않으니 관심은 자연스레 연간 2.5% 성장 달성 가능 여부에 쏠렸습니다. (참고로 상반기 성장률 전망치는 2.3%입니다.)

한국은행은 기자들이 질문을 하기도 전에 답을 먼저 내놨습니다.

"반도체 경기가 하반기부터 개선될 것이란 의견이 많기 때문에 2분기부터 경제 성장 속도가 가팔라지며 조사국의 전망 경로를 유지할 것으로…."

상저하고(上底下高). 추경을 포함해 정부 지출이 집행되고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였습니다.

어떻게 질문을 해도 "달성할 수 있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 "석 달 뒤에 또 내릴까요?"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의 연간 2. 5% 성장 전망치를 '전망치'라기 보다는 '기대치' 라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중앙은행으로서 성장률 전망을 더 낙관적으로 보는 측면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4월 한국은행이 전망치를 2.6%에서 2.5%로 내린 것도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정부의 추경 편성 등 확장 정책을 지켜볼 거란 해석이 많았습니다.)

그런 한은이 1년 새 성장률 전망치를 네 번이나 내렸습니다. 2018년 4월 2.9%, 7월엔 2.8%, 10월 2.7%, 올 1월 2.6%, 그리고 4월 2.5%까지 석 달마다 한 계단씩 한 계단씩 전망치가 낮아졌습니다.

 

[취재후 Talk] '성장률이 마이너스요? 진짜요?'
석 달마다 내려가는 한은의 연간 성장 전망


최근 일본 노무라 증권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낮췄습니다. 1%대 성장이라니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나라 민간연구소들도 성장률 전망치를 더 낮추거나 낮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부터도 당장 5개월 째 내리막인 수출 실적을 보면서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혹시 경상수지가 적자로 바뀌는 상황이라도 생기면 그 충격은 더 클 겁니다.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한은이 어차피 성장률 전망치를 나중에는 결국 내리겠지'하는 냉소적인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현 상황을 "과도하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 없다"는 한은의 설명은 올 7월과 10월엔 어떻게 달라질까요?

한은이 맞고 기자들의 우려가 틀렸다는 결과가 나오기를 소망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안타깝게도 점점 낮아지는 듯 합니다. / 최원희 기자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