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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

등록 2019.07.11 21:44

수정 2019.07.11 22:21

시인은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겁쟁이가 됐습니다. 시속 80km만 가까워져도 앞좌석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확인하느라 눈동자를 굴립니다. 그러고는 쓴웃음 짓습니다.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우습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문득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시인은 팬티 걱정을 우스꽝스럽게 늘어놓았지만, 평소 죽음을 염두에 두고 몸가짐을 가다듬는다는 얘기로 읽힙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는 종에게 아침마다 이렇게 말하라고 시켰습니다.

"대왕이시여, 당신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 '메멘토 모리'는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카르페 디엠', 현재에 충실하라와 함께 인생에 관한 3대 라틴어 경구로 꼽힙니다. 죽음과 친해지면 자연히 운명을 사랑하고 생을 열심히 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유난히 죽음과 얼굴 마주치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2010년 숨진 암환자들이 쓴 진료비의 3분의 1을 임종 전 한 달 동안 지출했다는 통계만 봐도 그렇습니다. 죽기 반년 전까지 적극적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가 95%에 이르러 미국 33%의 세 배 가깝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사이 많이 달라진 모양입니다. 작년 2월 존엄사법이 시행된 이래 지난달까지 5만3천9백명이 연명치료를 중단하거나 처음부터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새 제도 시행 1년 동안 사망한 환자 중에 연명치료 중단 서류에 서명한 사람이 71%나 됐습니다.

일본 어느 의사가 16년 동안 환자 300명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고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심장이 멈춘 마지막 순간 전기충격 회생술을 받느라 얼굴이 흉측하게 변해버린 환자를 보며 그는 결심합니다.

"나는 절대 병원에서 죽지 않겠다"고…

잘 사는 것 못지 않게 잘 죽는 것이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죽음 복도 타고 나는 것이란 옛 말이 있습니다만 이제는 잘 준비해야 하는 시대가 된 듯 합니다.

7월 11일 앵커의 시선은 '죽음을 기억하라'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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