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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울산 레미콘 제조사 "민노총 참여하면 교섭 없다"

등록 2019.08.09 09:38

수정 2019.08.09 13:33

(영상 설명 : 지난달 30일 운송비 인상 등을 요구하며 울산시청에서 농성하던 민주노총 건설노조 울산건설기계지부 레미콘지회 조합원들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 시청자 제공 영상)

 

울산 북구 송정중학교 건설 현장. 지난 1일 폭염특보가 내려진 날씨 속에서도 공사는 한창이었습니다.1층과 2층에서는 근로자들이 공사 자재를 나르고, 가설물을 설치하고 있었지만 본관동 3층과 후관동 옥상에는 거푸집만 앙상하게 남아있었습니다. 레미콘 공급 중단으로 20일째 공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현장 소장은 "다른 지역에서 레미콘을 공급 받으려 해도, 운송기사들이 막거나 작업을 방해한다"며 하소연합니다.

당장 내년 3월 개교 예정이지만, 현재 공정률은 27%에 머물고 있습니다. 울산에서만 내년 3월 개교를 앞둔 학교 7곳이 레미콘 공급 중단으로 공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취재후 Talk] 울산 레미콘 제조사 '민노총 참여하면 교섭 없다'
지난달 31일 울산시청 앞에서 열린 '레미콘 노동자 생존권 사수 건설노동자 결의대회'에 참가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운송료 인상 등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 "한 달 수입 150만원"...생계유지 위해 운송비 인상
■ 운송 기사 파업하자...레미콘 제조사, 집단 휴업 '강수'


민주노총 건설노조 울산건설기계지부 레미콘지회 조합원 400여명은 지난달 1일부터 운송비 인상을 요구하며 한 달 넘게 파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현재 4만 5천원인 1회 운송비를 5만원으로 인상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레미콘 지회에 따르면 운송기사 한 달 수입은 300만원 정도입니다. 보험료와 유류비 등을 제외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150만원도 안 된다며 운송료 인상은 생존권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레미콘 제조업체들은 건설경기 침체로 경영 환경이 악화돼 인상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둘 사이 입장을 좁히지 못하자 운송기사들은 파업에 돌입했고, 다음 날 레미콘 제조업체는 운송기사들에게 계약 만료를 통보했습니다. 통상 운송기사들은 1년마다 업체와 재계약을 맺어왔습니다. 급기야 울산 레미콘 제조업체 16곳 모두 공장 문을 닫고 집단 휴업에 들어갔습니다.

 


■ 울산시청 점거한 민주노총..."울산시가 중재 나서라" 
■ 울산시 "중재 권한 없어"...경찰, 불법 점거로 강제해산


레미콘 운송기사들은 "지난 6월부터 운송료 인상을 협상했지만, 회사는 아무 근거 없이 어렵다는 입장만 반복했다"며 "이제는 제조사들이 교섭에 일절 응하지 않아 대화 창구가 단절됐다"고 주장합니다. 이어서 이들은“울산시가 중재에 나서 달라”고 말합니다.

민주노총 울산건설기계지부 조합원 80여명은 지난달 30일 울산시에 중재를 요구하며 시청 본관 1층을 점거했습니다. 울산시는 중재 권한이 없다며 퇴거를 요청했습니다. 경찰도 세 차례 해산 명령했지만, 민주노총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경찰은 경력 200여명을 투입해 불법 점거하던 민주노총을 강제해산하고 38명을 연행했습니다.

 

[취재후 Talk] 울산 레미콘 제조사 '민노총 참여하면 교섭 없다'
울산시 북구의 한 레미콘 회사에 차량이 멈춰서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 제조사 "민주노총 참여하면 교섭은 없다"
■ 민주노총 간부 참석 소식에 제조사 불참 선언


레미콘 운송기사들은 시청까지 점거하며 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제조업체들은 쉽게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조업체들은 단순 운송료 인상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고 말합니다.울산레미콘협회 고위 관계자는 “운송료 인상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지만, 지부장, 지회장 등 민주노총 간부가 교섭에 참석할 경우 우리는 교섭에 응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실제 민주노총이 울산시청을 점거한 지난달 30일, 울산시의 요구로 레미콘 제조업체 3곳과 운송기사들이 한자리에 모일 예정이었습니다.하지만 레미콘 제조업체들이 갑자기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민주노총 간부가 교섭장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 레미콘 지회는 제조사가 파업 대오를 흔들려고 한다고 반발했습니다.

■ 제조사 "노조 협상 대상으로 인정하는 꼴"
■ 대법원 "레미콘 운송기사, 근로자 아니다"


레미콘 제조업체측은 민주노총 간부가 교섭장에 참석하는 순간 노조를 협상 대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레미콘 제조업체는 레미콘 운송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실제 레미콘 운송기사들은 현행법상 개인 사업자이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됩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란 개인사업자지만 사용자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를 뜻합니다.

2005년 대법원은‘레미콘 차주 겸 운송기사들은 레미콘 제조회사와 사용종속적인 관계에서 노무를 종사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정한 근로자라고 볼 수 없다(2005다20910)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레미콘 운송기사들로 구성된 노조는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 시험대에 오른 '울산 레미콘 파업'
■ 집단 휴업 VS 파업...한 달째 강 대 강 대치


이번 울산 레미콘 사태에서는 운송료 인상 문제와 더불어 레미콘 운송기사들을 과연 노동자로 볼 것인지, 이들이 만든 노동조합을 교섭 대상자로 인정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입니다. 레미콘 제조업체들은 노조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한 달 넘게 공장 문을 닫고 있습니다. 운송기사들도 파업을 유지하며 강대 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사태 장기화에도..."노동자 아니라 중재 의무 없다"
■ 레미콘 공급 중단에 학교 7곳 신축 중단...내년 개교 차질


사태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고용노동부는 레미콘 운송기사들이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중재 의무가 없다며 손을 놓고 있습니다. 울산시도 중재 권한 자체도 없을뿐만 아니라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울산지역 공사장에 한 달 넘게 레미콘 공급이 중단되고 있습니다. 내년 3월 개교를 앞둔 학교 7곳도 레미콘 공급 중단으로 공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학교 공사 외에도 도로 개설 공사장, 하수처리장 증설공사장 등 상당수 건설 현장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중학교 공사 현장에서 만난 현장 소장은 말합니다.

"공사 기간이 늘어나며 손실은 계속 커지고 있지만,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며 "남의 싸움에 왜 우리가 피해를 감수해야되는지 모르겠다" / 정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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