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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폐지 줍는 쪽방 노인들

등록 2019.08.19 21:49

수정 2019.08.19 21:54

"서른일곱 개의 방… 그 방 하나에 한 사람씩만 산다 해도 서른일곱 명일 텐데 봄이 되도록 내가 얼굴을 부딪친 사람은 서넛도 안 됐다… 이따금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 밤늦게 끓이는 라면 냄새…"

신경숙의 자전 소설 '외딴 방'은 1970년대 구로공단 여공들이 모여 살던 쪽방촌의 일상을 그렸습니다. 두 평 방에 비키니옷장과 나무 상, 작은 라디오가 살림의 전부, 그러나 쪽방은 여공들이 고단한 몸을 누이는 보금자리였고 희망의 전진 기지였습니다.

쪽방촌은 여공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세대교체를 했다가 고시원에 밀려났습니다. 하지만 고시원 월세도 버거운 노인들은 도심 뒷골목 쪽방으로 숨어 들어야 하는 처지입니다. 거기서도 못 버티면 노숙자가 되는 수밖에 없는 마지막 안식처이지요.

오늘 새벽 불이 나 칠팔십대 노인 세 분이 숨진 전주 여인숙도 다달이 사글세를 받는 쪽방, 이른바 달방이었습니다. 투숙객 대부분은 창도 없는 두 평 방에 지내며 새벽부터 폐지와 고철을 주우러 다녔다고 합니다. 그렇듯 폐지 수레를 끄는 노인이 일상 풍경이 돼버린 나라는 오직 대한민국뿐이라고 합니다.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는 노인이 백명 중 한 명, 6만6천명에 이릅니다. 하지만 손에 쥐는 돈이라야 한 시간에 2천2백원. 다른 근로 노인보다 80대 고령자가 많고, 건강도 나쁠뿐더러, 셋에 한 명꼴로 우울증 증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도 노인들은 아침 일찍부터 거리를 돌며, 가게 앞에 내놓은 종이상자를 차지하려고 경쟁을 벌입니다.

폐지 수집이 그나마 노인들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겁니다. 영화 '은교'에서 주인공은 늙어서도 존엄과 품격을 지키기 원하는 노인의 마음을 이렇게 항변합니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賞)이 아니듯, 내 늙음도 네 잘못으로 받은 벌(罰)이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노인의 소망은 그저 허망한 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OECD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오래 일해야 하는 삶… 그 고단한 노년의 현실을 극단적으로 상징하는 두 단어가 '쪽방'과 '폐지'입니다.

8월 19일 앵커의 시선은 '폐지 줍는 쪽방 노인들'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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