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대통령의 어머니

등록 2019.10.30 21:47

수정 2019.10.30 22:16

우리네 삶의 고달픔과 슬픔을 노래했던 시인 박재삼. 그의 어머니는 생선장사로 남매를 키웠습니다. 신새벽 삼천포에서 생선을 이고 진주 장터로 나갔다가 달빛 아래 돌아오곤 했습니다.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하는 눈들이 속절없이, 은전만큼 손 안 닿는 한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어머니 몸에선 언제나 생선 비린내가 났다. 등록금 봉투에서도 났다. 선생님 책상 위에 어머니의 눅눅한 돈이 든 봉투를 올려놓고, 얼굴이 빨개져서 돌아왔다…"

1960년대 어린 자식은 생선장수 어머니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어머니 몸에 밴 갯비린내는 육남매 평생의 힘이 됐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가장 그리워했던 풍경도, 국화빵 팔러 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바라보던 저녁 노을이었습니다. 모질게 가난했던 시절을 억척스럽게 살아낸 어머니들은 모든 자식들의 등불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어제 하늘로 돌아간 어머니의 손이 "아주 거칠었지만 늘 따뜻했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어머니는 흥남 철수 때 피란 와 시장 좌판을 벌이고 연탄을 배달하며 5남매를 키웠습니다. 하지만 맏아들은 얼굴에 검댕을 묻히며 연탄배달 돕는 게 창피해 툴툴거렸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부산역으로 암표 끊으러 가는 컴컴한 새벽길에 큰아들을 데리고 갔다는 얘기도 아프게 들립니다. 그러나 자식에게 부끄러웠던지 어머니는 암표를 사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큰아들이 정치에 나간 뒤 "뉴스 보면 가슴이 아파서 잘 안 본다"고 했습니다. 조용히 사는 게 아들 도와주는 것이어서 가짜 진주 목걸이 하나 있는 것도 안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자식 잘되기만 바라는 이 땅의 어머니들 마음 그대로입니다. 대통령은 어머니가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고 고생도 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습니다. 전쟁도 가난도 자식이 있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겠지요.

대통령은 빛바랜 묵주 반지를 늘 끼고 있습니다. 바삐 사느라 성당에 자주 가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20여 년 전 선물했습니다. 어머니는 떠났지만 자식의 손가락에 무한한 사랑으로 머물고 계실 겁니다.

10월 30일 앵커의 시선은 '대통령의 어머니'였습니다.

관련기사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