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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추적] 무작정 반복되는 살처분…농가들 "못살겠다"

등록 2019.11.13 21:31

수정 2019.11.13 22:07

[앵커]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한지 2달여가 지나면서 무분별한 살처분이 남긴 폐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몇년 간의 상황을 보면 가축역병은 2,3년을 주기로 반복됐고, 매번 대책은 살처분이었습니다. 농민들은 이번 열병 이후 다시 돼지를 키울 수 있는 '재입식'을 위해선 2년여가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부의 농가 지원은 고작 6개월입니다.

현장추적, 차순우 기자가 파산공포에 휩쌓인 농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5일 축산 농민들의 시위.

"(양돈 농가) 다 죽인다! 다 죽인다!"

정부 돼지 열병 살처분 정책이 농가를 죽인다는 겁니다.

김창섭 / 경기도 포천시
"이렇게 정책을 계속해서는 경기 북부 돼지 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돼지를 묻는다."

현실이 어떤지 현장을 찾아가 봤습니다. 플라스틱 환기구와 흩뿌려진 석회 가루만 보이는 살처분 매몰지들.

"어휴 냄새"

파주의 한 농장주는 키우던 돼지 2천여 마리를 묻었습니다. 평소 방역에 힘써 온 터라 더 억울합니다. 돼지 열병에 한 마리도 걸리지 않았는데, 예방 조치로 모두 살처분됐습니다.

파주지역 농장주
"근거에도 없는 강경한 대책으로 매몰을 했으면서, 보상은 법에 벗어난다고…"

돼지 열병 발병지와 거리가 먼 원주 농가도 울상입니다. 2년 전 구제역으로 돼지 3천 마리를 살처분 당한 뒤 힘겹게 재기했는데, 돼지 열병으로 이동금지 조치가 내려 판로가 막혔습니다.

원주지역 농장주
"창고인데,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여기 넣어야 되는 거야."

이들 농가는 대량 살처분 정책이 농민들 목을 조른다고 입을 모읍니다.

정부는 돼지 열병 감염 농가와 인근 농가까지도 예방적 살처분한 뒤 보상해줍니다. 살처분 돼지는 전량 시가 보상하고 6개월간 최대 340만 원 생계보조비와 저리 사업자금도 대출해줍니다.

하지만 농민들은 현실을 반영 못 한 대책이란 입장.

돼지 농장주
"사실상 농장은 보상금이 아니라, 매매대금 받는 거예요."

씨돼지를 구매해 번식시키고 새끼를 키워 출하까지 적어도 1년 3개월이 걸리는 등 거의 2년 가까이 소득 없이 지내야 한다는 겁니다.

"금방 삭아요. 2~3년 있으면 아예 못써요."

이번 돼지 열병 살처분 대상 농가는 170여 곳으로, 이미 가구당 대출금 규모는 평균 10억 원에 달합니다.

가축 전염병 발생 때마다 정부 대책은 거의 그대로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가축 전염병으로 살처분된 가축은 9800여만 마리에 달하고…

반면 돼지 농가 수는 2010년 7,700여 곳에서 대규모 구제역 발병 이후 2017년 말까지 4,000여 곳으로 계속 줄었습니다.

돼지 농장주
"매몰할 때 당시의 재정 건전성에 따라서 다시 못 일어날 수도 있고…"

미국과 유럽의 경우 살처분은 발병 농가로 한정하고 방역과 이동 제한을 강화하는 등 확산 억제에 초점을 둡니다. 살처분 대상이 많지 않아 농가에는 살처분 돼지뿐만 아니라 경영 손실까지도 보상해줍니다.

서정향 /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ASF 같은 경우는 접촉에 의해서만 대부분 전파됩니다. 10km, 전 지역 살처분 부분은 정말 정부에서 신중하게 고려해서…"

'축산 청정국' 지위를 지키려고 대규모 살처분에 의존하다시피 해온 국내 방역 체계도 재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돼지 농장주
"그래도 최소한 이게 나라냐 소리는 안 나오게 해줘야지."

TV조선 차순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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