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노동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52시간제, 번지점프를 하다

등록 2019.11.19 21:52

수정 2019.11.19 23:49

남해 어느 고즈넉한 절, 객사 통유리창에 붓 그림이 붙어 있습니다. 귀여운 참새와 함께 '새 조심'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투명유리를 미처 보지 못한 새들이 부딪치지 말라고 붙여놓은 겁니다. 새를 조심하라는 게 아니라 새더러 조심하라는 얘기지요. 서귀포 언덕 어느 화가의 화실 통유리창에도 큼직하게 새를 그려뒀습니다. 덕분에 새가 유리창으로 돌진하는 일이 뜸해졌다고 합니다. 유리창이나 방음벽에 부딪쳐 죽는 새가 한 해 8백만 마리에 이릅니다.

눈이 머리 양 옆에 달려 있어서 공간감각과 거리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알아챈다 해도 이미 돌이킬 수 없어 횡액을 당하기 일쑤지요.

번지점프도 유연성과 탄성이 전혀 없는 밧줄을 묶고 뛰어내린다면 끔찍한 일이 터지고 말 겁니다. 국가 정책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정책이 몰고 올 후폭풍을 다각도로 내다보지 못하거나, 보여도 무시하고 돌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팽팽한 밧줄에 매달리듯 추락해서는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북한이 지난해 소득주도 성장을 가리켜 "허황되기 그지없다"고 했습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더니 최악의 고용난과 양극화를 초래했다"고 비꼬았습니다.

자유시장경제를 한 줄 배워본 적 없는 북한 눈에도 이렇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어디 소득주도 성장뿐이겠습니까.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해 국민경제를 실험 대상으로 삼은 과격하고 급진적인 정책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러던 정부가 뒤늦게나마 처음으로 주 52시간제 강행에서 반발쯤 물러섰습니다. 어물어물 모호하게 내놓은 땜질 처방이긴 합니다만, 획일적이고 경직되게 밀어 붙인 결과가 이제야 눈에 보이는 것일까요.

'문재인 케어'의 하나로 MRI 촬영 건보 적용을 확대했다가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축소를 검토하는 것 역시 비슷한 후퇴이자 예상된 결과입니다.

정치학자 마이클 메이시 교수는 트럼프식 정치를 총탄형이라고 했습니다. 지지층을 위해 방아쇠를 당긴 방향으로만 달려간다는 겁니다. 어쩐지 남의 얘기로만 들리지가 않습니다.

대통령이 오늘 국민의 말을 귀담아 듣겠다며 국민과의 대화를 했습니다. 이 가운데 쓴 소리만 골라 청와대 집무실 벽에 붙여 놓으시면 어떻겠습니까? 마치 사찰 유리창의 새그림처럼 말이지요.

11월 19일 앵커의 시선은 '52시간제, 번지점프를 하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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