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맹탕 국물 선거법

등록 2019.12.24 21:47

수정 2019.12.24 21:54

시인이 어머니 모실 형편이 안 돼서 친척집에 보내드리려고 터미널에 갔습니다. 어머니는 중이염을 앓아 고기를 들면 안 되는데 굳이 설렁탕집으로 갑니다. 아들에게 고깃국을 먹이고 싶어서입니다. 어머니는 "소금을 많이 쳐서 짜다"며 국물을 더 달라더니 슬쩍 아들 뚝배기에 붓습니다.

시인은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립니다.

"눈물은 왜 짠가?"

설렁탕 국물은 어머니 사랑입니다.

1960년대 김수영 시인이 설렁탕집에 갔다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며 주인에게 욕을 합니다. 그러고는 탄식합니다.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기름 뜬 탕은 정작 부정과 불의에 침묵하는 소시민의 부끄러움입니다.

"설렁탕도 기름 빼고 따귀 빼고 소금까지 빼버리면 맹물에 밥 말아먹는, 맛이 있겠느냐…”

정치판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진한 설렁탕 국물을 만들려고 시작했는데 현실은 밥그릇 싸움을 하다가 맹탕이 돼버리기 일쑤입니다.

기름 빼고 따귀 뺀 '4 플러스 1' 선거법안이 딱 그렇습니다. 민주당과 네 군소 정당은 그 동안 입만 열면 정치개혁, 선거개혁을 위한 선거법이라고 내세워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1년 진흙탕 싸움 끝에 나온 누더기 법안에는 명분도 취지도 목적도 실종돼 버렸습니다. "국민은 선거 계산법을 알 필요 없다"던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말이 어떤 면에선 현실이 되어 버린 셈입니다.

"선거제도 개혁의 초심과 취지로부터 너무 멀리 왔고…"

하지만 이 와중에서도 누가 이익을 챙겼는지는 자명합니다. 그런데 한국당이 비례 한국당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손익 계산이 불투명해졌습니다.

남는 것은, 의석 늘릴 욕심이 앞선 군소 정당과, 공수처법 처리에 이들의 표가 절실한 여당의 허망한 연합, '그들만의 리그' 뿐입니다.

IMF사태 이후 국민의 정치개혁 압력에 몰렸던 여야가 2000년 개혁법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말만 개혁이고 자기네 밥그릇 늘리는 나눠먹기 일색이었습니다.

결국 국민적 분노와 낙선운동에 굴복해 거둬들여야 했지요. 야합은 반드시 역풍을 맞기 마련입니다.

성탄 전야에 적절치는 않습니다만 정치판을 향한 노(老)시인의 일갈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꿀단지 옆으로 파리떼 꼬이듯이… 참말로 가관이구나, 시정잡배 투전판…"

12월 24일 앵커의 시선은 '맹탕 국물 선거법'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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