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엄마 장관, 아빠 차관

등록 2020.02.19 21:49

수정 2020.02.19 22:02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강릉 빙상경기장 앞에서 벌어졌던 제설훈련 모습입니다. 병사들이 매스게임이라도 하듯 반듯하게 오와 열을 맞추고 일사불란하게 빈 삽질을 합니다. 순전히 보여주기 위한 군대식 헛 삽질이 쓴웃음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삶은 남의 시선을 끌려는 가식일지도 모릅니다.

시인 김수영은 글을 파는 매문가를 자처했습니다. "신문에 이름과 사진이 나는 것을 좋아하고, 텔레비전에 나가 이름이 팔리고 권위가 생기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지요.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전도사가 모범수로 출소한 금자씨를 환영해 줍니다.

"두부처럼 하얗게 살라고, 다시는 죄짓지 말라는 뜻에서 먹는 겁니다" "너나 잘하세요"

소설가 박완서가 마지막 작품에 붙인 제목 '친절한 복희씨'도 '친절한 금자씨'를 패러디 한 겁니다. 역시 인간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신랄하게 꼬집지요.

법무부가 공식 유튜브에 올린 '엄마 장관 아빠 차관, 서울소년원에 가다'라는 영상입니다. 지난 설날 추미애 장관과 김오수 차관이 병풍 치고 보료와 방석 깔고 앉아 소년 재소자들로부터 세배를 받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햄버거 교환 쿠폰을 건넵니다. 명절을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소년들을 자상하게 챙기는 모습이라지만, 저는 이 영상을 보면서 마음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민망함이 괜히 저의 몫이 된 것 같아 살짝 화도 났습니다.

유독 저만 이런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나 지금이나 사병들이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별이 떴다"는 겁니다. 사단장이 시찰 온다고 하면 며칠씩 온 부대를 쓸고 닦느라 비상이 걸리기 때문이지요.

법무장관의 소년원 방문은 국방장관의 소대 시찰 격이니까 모르긴 해도 재소 소년들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이 세배도 엎드려 절 받기는 아니었을지 마음에 걸립니다. 거기까지는 백 번 접어 그럴 수도 있겠다 치더라도 그 모든 장면들을 잘 찍어 공개한 데 이르러선 화를 누르기 힘듭니다.

인권을 수호한다는 법무장관이 소년 재소자들을 자신의 홍보에 들러리 세운 것은 아닌가요. 진짜 엄마, 아빠였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지, 엄마 장관 아빠 차관에게 다시 묻습니다.

2월 19일 앵커의 시선은 '엄마 장관, 아빠 차관'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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