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4월의 희망

등록 2020.04.17 21:53

수정 2020.04.17 22:18

"내 스스로 벌어서 남는 돈은 고향으로 보내고, 한편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이제 의젓한 여고 졸업생이…" 잊혀진 이름, 산업체 부설학교의 눈물 어린 졸업생 답사입니다.

1976년 구로공단에 찾아간 박정희 대통령이 어린 여공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또래들처럼 교복 한번 입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감정이 북받친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똑같은 교육기회를 줘야 한다"며 만든 것이 산업체 부설학교입니다.

학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지만 들꽃 같은 소녀들의 삶은 신경숙 자전소설에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를 안 나왔습니다.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살았으니까요. 기독교 장로도 못 되었습니다. 일요일도 하루 종일 일했으니까요. 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 12년 꼬박 야간에만 다녔습니다…"  전쟁통에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소년가장이 주경야독으로 시인이자 교수가 돼 돌아본 '야간 인생'입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인간 승리를 이뤄낸 당선인이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서 각별히 제 눈길을 붙잡는 이가 부산의 김미애 당선인입니다. 그는 해녀였던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뜨면서 열일곱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방직공장에 들어갔습니다. 3교대 여공으로 일하면서도 부설학교에 다니며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물아홉 살에 동아대 야간 법대에 입학해 서른넷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아동-여성-인권 변호사로 일하며 국선변호인으로 변론한 사건만 7백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는 독신으로 살면서 입양한 딸과, 일찍 세상을 뜬 언니의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여공, 산업체 부설학교, 야간대학의 굴곡진 삶을 넘어 국회에 입성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그는 "조국 전 장관의 위선과 대조적인 제 삶의 궤적이 당선으로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개천의 용이 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조국 어록을 다시 떠올립니다. 그런 사람에게 김 당선인은 개천의 용이 어떤 것인지 당당하게 보여줬습니다. 다 거론하진 못하지만 이번에 새로 국회에 들어가게 된 의원 가운데는 이런 사람들이 여럿 있을 겁니다. 비록 정치가 혼탁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지만 4년마다 4월이 되면 희망을 품어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4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4월의 희망'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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