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추한 퇴장

등록 2020.04.24 21:46

수정 2020.04.24 21:49

"나중에 봐…"

천재 과학자가 몸에 약물을 주사해 투명인간이 됩니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 그 힘과 자유 놓칠 수 없지…" 

그는 여자 화장실과 욕실을 드나들고, 이웃집 여성을 겁탈합니다. 이 영화의 제목 '할로우 맨'은 '속이 텅 빈 인간'을 뜻합니다. 그렇듯 남의 시선에서 벗어난 주인공은 내면의 이성을 송두리째 비워버리고 추한 욕망에 사로잡혀 파멸을 자초합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반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반지를 얻은 양치기 기게스가 왕을 죽이고 왕국을 차지하지요. 플라톤은 반지가 있건 없건 인간은 악한 본성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게스의 반지'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악의 권능 '절대 반지'로 이어졌습니다.

오거돈 전 시장은 여직원을 성추행하기 한달 전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여성 한 명, 한 명의 행복이 곧 부산의 행복" 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적어도 부산에서만은 원치 않게 꿈을 잃는 여성은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행동만은 예외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그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있었던 것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사퇴 회견에서 "5분의 짧은 면담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경중을 떠나"라는 표현도 굳이 덧붙였습니다. 그가 한 행위가 마치 가볍고 짧고 불필요한 수준의 접촉이었다는 변명처럼 들립니다. 그런 회견에 대해 피해자는 "경중을 따질 수 없는 범죄였다"며 깊은 유감을 표했습니다. 오 전 시장이 짧다고 한 그 5분 이후 "혼란스럽고 무서웠으며 지금도 무섭다"고 했습니다.

지난 2년 미투 운동으로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폭로와 처벌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겉으로는 정의와 인권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사람들의 위선과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그러고도 지도층의 뒤틀린 성 윤리가 또 다시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진중권씨가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민주당 인사들을 거명하며 "정말 대한민국 주류가 바뀐 모양" 이라고 비꼰 것을, 그냥 웃어넘길 수만 없는 요즈음입니다.

4월 24일 앵커의 시선은 '추한 퇴장'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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