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꽃비 내리는 이 밤

등록 2020.04.30 21:45

수정 2020.04.30 21:56

서산 개심사에 지금 온통 꽃불이 났습니다. 아담한 절집을 탐스러운 진분홍 겹벚꽃이 에워쌌습니다. 명부전 마당에는 신비로운 연둣빛 청벚꽃이 소담스러운 꽃 커튼을 드리웠습니다. 해우소 가는 길에도 빨갛고 하얀 겹복사꽃이 흐드러져 꽃 멀미가 납니다.

순천 선암사에도 꽃비가 내립니다. 육백 살 매화가 지고 난 사월에서 오월까지 겹벚꽃 흰철쭉 영산홍 자산홍 복사꽃이 피고지며 꽃대궐을 이룹니다.
원통전 옆에는 키 3미터 넘는 삼백 살 자산홍이 화사한 보랏빛 꽃을 가득 피웠습니다. 칠전선원 안마당 사백 살 영산홍은 담 밖으로 가지 내밀어 기웃거립니다.

오늘 사월 초파일을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피어 부처의 공덕을 노래합니다.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깨달음을 얻고 설법할 때 하늘에서 내렸다는 꽃비, 우화처럼 말입니다. 김지하 시인이 1974년 사형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있던 어느 날 밤, 감옥 창밖 멀리 꽃불이 떴습니다.

"꽃밭 같네요, 언젠가는 저기 저 꽃밭, 살아 못 간다면, 황천길에만은 꽃구경 할 수 있을까요…"

그날은 오늘처럼 부처님 오신 날 밤이었고, 꽃불은 인왕산에 밝힌 연등이었습니다. 시인은 간절한 마음 담아 합장했다지요..

"캄캄한 내 가슴의 옥죄임 속에도 부처님은 오실까요, 연등은 켜질까요…"

불교에서는 꽃을 만행화라고 합니다. 꽃을 피우려고 인고의 세월을 견디는 것이 불가의 수행, 만행을 닮아서지요. 하지만 꼭 고행의 길을 가야만 마음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어떤 이가 석가모니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저는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습니다." 석가모니가 말씀했습니다. "베풀어라, 가진 것 없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가 있느니라…"

그 일곱 보시가, 정다운 눈, 웃는 얼굴, 따뜻한 마음, 공손한 말, 친절한 몸짓, 자리 양보하기, 남의 마음 헤아리기… 이른바 무재칠시입니다. 이렇게 소박 담백한 가르침이 널리 퍼져간다면 세상은 한결 숨쉬기 편한 곳이 되겠지요. 그리고 모두들 지금 앉은 자리가 꽃밭으로 활짝 피어날 겁니다.

4월 30일 앵커의 시선은 '꽃비 내리는 이 밤'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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