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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진풍경, 꽃과 파리

등록 2020.06.12 21:51

수정 2020.06.12 21:57

이 두 그림을 보시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예, 맞습니다. 명화 '모나리자'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콜롬비아 화가 보테로가 풍만하게 그린 패러디 작품입니다. 단순한 모방을 넘어 풍자와 울림이 있는 창조적 비틀기, 패러디가 가장 활발한 장르가 시입니다.

"신은 시골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회를 건설했다. 신은 망했다"

영국 시 한 줄에 단 다섯 글자를 덧붙였는데 유명 문학상을 수상하며 각광받은 시입니다. 인간의 탐욕을 말하는 촌철살인 덕분이지요.

명시 '섬'도 다른 시인의 손에서 새 날개를 답니다.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온건 중도를 용납치 않고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분열적 시대상을 재미나게 꼬집습니다.

요절 시인 기형도의 시 '빈집' 패러디가 대통령 연설문을 둘러싼 설전에 등장했습니다. 논객 진중권씨가 "대통령은 남이 쓴 연설문을 그냥 읽는다"고 하면서 시작된 공방이지요. 청와대 전현직 비서관들이 대통령이 원고 고치는 사진까지 올려가며 일제히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진씨는 "교정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자기 철학이 없다는 얘기"라고 다시 한번 비꼬았습니다.

정작 재미난 부분은 여기서부텁니다. 시인인 신동호 연설비서관이 "당신이 꽃을 꺾고 나는 운다. 헛된 공부여 잘 가거라"는 패러디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진중권씨가 운동권 출신 청와대 참모들을 파리에 비유하는 패러디로 맞받았지요.

국가지도자의 연설 원고는 대필 작가, 이른바 스피치 라이터가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케네디부터 레이건, 오바마까지 명연설로 이름난 대통령 뒤에는 늘 전설적 필자가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김대중 대통령은 원고를 빨간 펜으로 빼곡하게 수정했고, 고칠 게 너무 많으면 구술 녹음테이프를 줬다고 합니다. 노무현 정부 연설비서관이었던 작가 강원국씨는 처음 두 달 동안 쓴 원고를 대통령이 안 읽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이건 내 글이 아니라"며 원하는 것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사실 대통령의 연설을 누가 썼고 얼마나 고쳤느냐가 중요한 건 아닐 겁니다. 그리고 진중권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대통령 참모들이 정말로 몰랐을까요? 그런데도 마치 대단한 모욕이라도 당한 듯 일제히 달려드는 그 모습이 참으로 우스꽝스럽습니다.

대통령을 전제 군주처럼 생각하는게 아니라면 내가 대통령을 모신 사람이라는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잠시 제 얼굴이 화끈합니다.

6월 12일 앵커의 시선은 '진풍경, 꽃과 파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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