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수고했다 사랑한다

등록 2021.01.14 21:50

수정 2021.01.14 21:56

예순을 바라보는 초로의 아주머니가 마을 한글학교에서 글을 깨우쳐 시를 썼습니다.

"어머이 아부지는 내를 안 가르쳤지만, 난 이제 공부를 한다. 하늘에 있는 우리 어머이 아부지, 졸업식 날 오실까"

시 쓰는 농업인, 홍쌍리 할머니는 매실밭을 일구느라 자식 졸업식에 한번도 못 갔습니다.

"엄마가 몰라서 미안해. 먹고사는 게 너무 바빠서. 그래도 잘 커줘서 고마워"

시인의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 14금 가락지를 가슴에 꼭 품고 계셨습니다. 시인이 대학 졸업식에서 상으로 받아 그 자리에서 끼워드렸던 가락지입니다. 비록 14금이지만 왕관인들 그보다 소중했을까요. 시골에서 교편을 잡던 시인이 진눈깨비 내리는 졸업식을 봅니다. "붉고 큰 꽃다발 가슴으로, 슬프고 기쁜 기념사진을 찍는다. 눈발처럼 키득거리는 놈은, 밥 먹듯 매맞던 녀석이다" 시인은 이 튼튼한 아이들이 이끌 아침의 나라를 생각합니다. 

눈밭 가득 커다랗게 쓴 '축 졸업' 그제 내린 눈을 선생님이 정성껏 쓸어 운동장에 띄운 축하 글입니다. 고운 아이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떠나 보내는 애틋한 사랑이, 눈보다 눈부십니다. 벌써 졸업식이 한창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졸업식 없는 졸업이 많습니다. 코로나 때문이지요. 대부분 영상과 온라인으로 졸업식을 치르고 차를 타고 와 졸업장을 받아가는 '드라이브 스루' 졸업식도 등장했습니다. 비대면 졸업식을 앞둔 어느 초등학교 교장실 앞에 아이들이 글을 써 붙였습니다. "최악의 졸업식을 맞고 싶지 않습니다. 저희를 믿고 등교하게 해주세요" 소원은 이뤄졌습니다. 아이들은 강당 졸업식에서 선생님들과 석별의 정을 나눴습니다. 

지역과 학교 형편에 따라 대면 졸업식을 하는 곳도 있지만 대개 가족은 못 오게 합니다. 왁자하게 기념사진을 찍던 운동장도, 교문 앞에 서던 반짝 꽃시장도 사라졌습니다. 온 가족 짜장면 외식도 하기 어렵습니다. 사회로 나서야 할 졸업생들 앞에는 암담한 취업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지만, 서로 껴안는 포옹의 온기가 썰렁하게 식어버린 졸업식만큼, 우리를 슬프게 하는 풍경도 드물 겁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라도 더 깊이 안아주고 더 따스하게 다독이고 싶습니다.

1월 14일 앵커의 시선은 '수고했다 사랑한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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