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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환상의 콤비

등록 2021.04.04 09:00

'이 사람이 정말 서울중앙지검장인가?' CCTV를 처음 본 순간, 눈을 의심했다. 최고급 세단의 뒷자리에서 내린 뒤, 옆의 차로 옮겨타는 남성에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뒤에서 흰색 승용차가 따라 들어오자 황급히 얼굴을 돌리고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차 뒷자리에 타기 전에도 좌우를 한 번씩 더 돌아보았다. 영락없이 누군가가 자신을 볼까봐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첩보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휴일 오후, 허름한 공사장 옆 일방통행 도로는 남의 눈을 피하기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차에서 내린 뒤 불과 10초 만에 차를 갈아탈 수 있도록 시간과 동선도 철저하게 계획해 놓았다. 수억만분의 일의 확률로 우연히 지인을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아무도 모르는 '완전범죄'처럼 끝날 것 같았던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CCTV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화면은 희미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서울중앙지검장이라는 것을.

이성윤 지검장은 "공수처의 피조사자로서 공수처의 출석요구를 받고, 당시 공수처에서 요구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출석하여 조사를 받았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투다. 서울중앙지검장은 수사의 ABC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공수처의 은밀한 '에스코트 조사' 제안을 덥석 받고는 차를 옮겨 탈 때 좌우를 여러번 유심히 살폈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문제가 된다는 것을 뻔히 알았다는 것이다.

'에스코트 조사'를 제안한 것은 공수처였다. '보안상의 이유'라고 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의 아이디어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었는지는 모른다. 김 처장은 자신의 관용차를 내줬다. 자신의 운전기사도 못 믿겠었는지, 비서관에게 운전을 시켰다. 공수처는 관용차가 2대밖에 없었는데, 한 대는 뒷자리 문이 열리지 않는 체포피의자 호송용이어서 불가피하게 처장의 관용차를 이용했다고 해명했다. 피의자에게 피의자 호송용 차량을 보내지 않고 기관장의 관용차를 보냈으니 바로 '에스코트'이고 '의전'이다. 그 피의자는 정권의 눈엣가시였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사사건건 충돌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동문이자, 차기 검찰총장 1순위 후보다.

CCTV 공개 다음날, 김진욱 공수처장은 출근도 한시간 반 정도 일찍했고, 점심도 청사내에서 도시락으로 먹으면서 기자들을 피했다. 늦은 퇴근길에도 김 처장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설명자료를 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피하기 급급했다. 항상 단정한 모습으로 기자들 앞에서 ‘공정한 수사’를 하겠다고 말하던 공수처장의 당당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공수처와 검찰은 사건의 인지와 이첩, 그리고 수사와 기소에 이르기까지 협조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김진욱-이성윤은 '환상의 콤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건의 재이첩과 기소를 놓고는 신경전을 하고 있으면서 엉뚱하게 '에스코트 조사'에나 손발이 척척 맞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게다가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고는 김진욱과 이성윤 누구도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환장의 콤비'다. / 배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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