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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보라매, 별이 되다

등록 2022.01.14 21:50

수정 2022.01.14 22:17

공군사관학교에 기체와 한몸이 된 두 파일럿의 흉상이 있습니다. 아버지 박명렬 소령과 아들 박인철 대위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다섯 살 때 팬텀기를 몰고 훈련하다 순직했습니다.

아들은 고생하는 홀어머니를 보며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향한 애증과 그리움은, 빨간 마후라에 대한 동경으로 바뀌었습니다.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파일럿이 돼 "아버지처럼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조종사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KF-16을 몰고 나갔다가 추락해 아버지 곁에 묻혔습니다. 어린이날 에어쇼에서 묘기를 펼치던 전투기가 요동치다 인근 잔디밭으로 추락했습니다.

숨진 조종사 김도현 중령의 왼손은 가속 스로틀을, 오른손은 조종간을 쥐고 있었습니다. 비상 탈출 손잡이만 당기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겠지만 왜 끝까지 조종간을 잡고 있었겠습니까? 

기체가 관람석으로 추락하는 걸 막기 위해 그랬던 겁니다. 객석에는 수많은 어린이를 포함해 천3백여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엊그제 F-5E기 사고로 순직한 심정민 소령이 "민가 추락을 피하려다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공군이 밝혔습니다. 

심 소령은 "이젝션"을 두 번 외치며 탈출 의사를 관제탑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야산에 추락할 때까지 10초 동안 탈출 손잡이를 당기는 소리는 블랙박스에 녹음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군은 "탈출할 시간이 충분했지만 주민의 희생을 끝까지 막아보려다 시기를 놓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추락 지점 인근에는 4백가구 아파트와 요양원, 대학 캠퍼스, 공장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그의 살신성인을 기리는 마음이 애틋할수록, 그의 희생을 부른 구 조적 문제는 없는지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공군이 F-5기를 운용한 지도 30년이 됐습니다. 지금도 여든 대가량 보유하고 있고, 앞으로도 8년쯤 더 사용한다고 합니다. 더 오래된 F-4 팬텀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2천년 이후 두 기종 열일곱 대가 추락했고 젊은 조종사가 열 명 넘게 꽃다운 생명을 바쳤습니다.

아들 박인철 대위의 목숨을 앗아갔던 KF-16기만 해도 잇따른 추락으로 공군참모총장이 물러났고, 조사 결과 정비불량이 심각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요.

심 소령의 헌신이 또 다른 희생을 막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값진 추모도 없을 겁니다. 결혼한 지 갓 1년 된 스물아홉 살 눈부신 젊음 앞에 톨스토이의 명언을 바칩니다.

"사랑은,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약하고, 남을 위해서는 강합니다"

1월 14일 앵커의 시선은 '보라매, 별이 되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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