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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부산 유엔공원에 잠든 영혼들

등록 2022.06.21 21:52

수정 2022.06.21 21:57

가수 이승철씨는 6.25 참전용사들과 '아리랑'을 합창했습니다. 레몽 베나르씨를 비롯해 그가 초대한 프랑스 노병들의 눈물 어린 신청곡이었습니다. 그는 6.25와 베트남전에서 싸웠던 부친이 현충원에 잠들어 계시기에, 생면부지 대한민국을 지켜준 분들이 남 같지가 않았습니다. 베나르씨는 "내가 좋아하는 나라, 한국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했고 부산 유엔공원에 안장됐습니다. 유엔군 전사자 묘지에 퇴역용사가 묻힌 첫 사례였습니다.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인의 대한민국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캐나다의 허시 형제는 생사가 엇갈렸습니다. 먼저 참전한 동생이 걱정돼 형이 뒤따라 한국 땅을 밟았지요. 서로 소식을 모르던 어느 날 동생은, 성이 허시 인 병사가 총상을 입었다는 얘기를 듣고 달려갔습니다. 캐나다에 있어야 할 형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형은 그리던 동생 품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동생은 죄책감을 떨치지 못한 채 숨지면서 "형 곁에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형제는 61년 만에 재회해 나란히 누웠습니다.

캐나다 참전용사 존 코미어씨가 오늘 유엔공원에 안장됐습니다. 뇌졸중을 앓으면서도 "꼭 한국에 묻히게 해달라"고 부탁해 뜻을 이뤘습니다. 그는 피 흘려 지킨 나라가 아직도 전쟁상태라는 걸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유엔공원에 잠든 열한 나라, 2천 3백 열네 분 중엔 부인 열 분이 합장돼 있습니다. 호주의 낸시 휴머스턴씨는 결혼 3주 만에 남편이 전사했습니다. 자식이 없었지만 평생 홀로 살다 유언했습니다. "이제 남편 곁에 있고 싶다"고… 유엔공원에서 일하며 아버지 묘소를 지킨 아들도 있습니다. 캐나다인 레오 드메이씨는 젖먹이 때 입양돼 50여 년이 지나서야 아버지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예순다섯 살까지 10년을 아버지 곁에 머물렀지요.

해마다 11월 11일 오전 열한 시가 되면, 세계의 6.25 참전용사들이 부산을 항해 거수경례를 하며 묵념합니다. 추모행사 '부산을 향하여'를 제안한 캐나다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 씨가 작년 11월 11일 유엔공원에서 자작시를 낭송했습니다.

"우리 소중한 청춘의 나날들, 여기서 거룩하게 지켜지리라. 우리가 사랑으로 구한 사람들의 심장에 의해"

70여 년 전 이역만리까지 달려와 피 흘려 준 꽃다운 젊음들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이제 전우들 곁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노병들이 우리는 더 자랑스럽습니다.

호국보훈의 달, 6월 21일 앵커의 시선은 '유엔공원에 잠든 영혼들'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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