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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자의 동분서주] 누구를 위하여 '압수수색 영장 심문제도'를 도입하나?

등록 2023.03.07 19:36

수정 2023.03.07 20:00

[안기자의 동분서주] 누구를 위하여 '압수수색 영장 심문제도'를 도입하나?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대검찰청과 대법원은 서초대로를 끼고 나란히 서 있습니다. 그런 두 기관이 요즘 냉랭합니다.
바로 대법원이 도입하려고 하는 '압수수색영장 심문' 제도 때문입니다.

압수수색은 수사기관이 강제수사를 알리는 신호탄이자 증거 확보를 위한 중요한 절차입니다. 그동안 법원은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면 주로 서류 심사를 통해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때로는 검찰에 전화를 해서 의문점 등을 묻기도 했지만, 일반적이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법원이 이제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할때도 '영장실질 심사'처럼 수사 기관을 출석시키는 것은 물론 제보자나 피의자를 불러 압수수색 영장 발부가 합당한지를 따져 묻겠다는 것입니다. 수사 계획과 압수수색 검색어 등을 기재하도록 하는 안도 포함돼 있습니다.

■대법원, '압수수색 영장 심문' 도입 추진
제도 도입의 명분은 과도한 압수수색으로 인해 개인정보의 자기 결정권이 침해받는 것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회계장부 정도가 압수수색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PC와 휴대폰, 이메일 등 전자 정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그렇다보니 수사 대상이 아닌 개인의 내밀한 정보까지 압수수색으로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 심문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대법원의 생각입니다.

대법원은 이를 '형사소송 규칙'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의 주체가 법원인만큼 법원 내부의 규칙으로 정하겠다는 겁니다. 한번 규칙으로 정해지면 그 규칙을 바꿀 수 있는 주체는 대법원뿐입니다.

문득 의문이 듭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검사나 경찰관 뿐 아니라 당장 제보자와 피의자 등이 법원에 출석해야 합니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먼 나라 얘길일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이 제도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특히 제보자나 피의자를 어떻게 강제구인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제보자를 불렀다가 수사 받는 대상에게 노출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피의자를 부른다면 수사받는 대상자에게 '당신의 물건 중 어떤 것을 압수수색하겠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압수수색 영장 심문 제도는 단순히 법원의 절차 하나를 추가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국민생활에 영향을 주는 제도라면 국민의 대의 기구인 국회를 거쳐 입법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2년동안 공식 논의 없더니...갑자기 입법예고
더군다나 대법원은 갑작스럽게 이 제도를 들고 나왔습니다. 지난 2월 15일 국회 법사위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김남국 의원마저도 이런 말을 합니다.

"법원행정처 처장님, 저희 지금 법사위 위원들이 다 깜짝 놀랐습니다. 압수수색 전에 법원에 신문할 수 있도록 하는 이 형사 절차 제도 규칙 변경되는 것 아무도 몰랐습니다."

"적어도 법사위 위원들에게는 설명하고 의견을 좀 듣던가, 이런 절차가 있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중요한 절차를...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압수수색 영장 심문제도에 대한 공식 논의는 2021년 3월 사법행정자문회의가 마지막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이후 내부 논의를 계속 해왔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공론화된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2023년 2월 3일 입법예고와 동시에 관계기관의 의견을 받겠다고 밝혔습니다.

■"수사 밀행성 해쳐"…관계기관 "반대" 한목소리
뜬금없이 튀어 나왔다는 지적은 뒤로 하고 관계기관(법무부, 대한변호사협회, 대한법무사협회, 한국형사소송법학회, 경찰청)의 의견은 어떨까요?

하나 같이 반대입니다. 수사의 밀행성을 해치고, 실체적 진실 발견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게 공통된 의견입니다. 여기다 형사소송법 개정없이 규칙으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자 삼권 분립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대법원도 이를 모르진 않은 듯 합니다. 2월 15일 법사위 회의에서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법원 규칙제정권이라는 것은 우리 헌법에서 부여돼 있는 대법원에게 보유된, 약간 법률 입법보다는 수준이 낮은 것이기는 합니다만 입법권이기 때문에..."

말이 참 어렵습니다. 조금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압수수색 영장 심문제도 도입은 국회의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쯤은 다 알 것입니다. 윤관 대법원장 시절 도입된 영장실질심사(구속전 피의자 심문제도) 또한 형사소송법, 즉 국회가 입법권을 가진 법률로 규정돼 있습니다. 법률이 위임하는 한에서 규칙은 제정돼야 하는데, 압수수색영장 심문제도 도입의 토대가 되는 법률은 어떤 것인 걸까요?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가 삼권분립을 주장한 이래 민주 국가는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입법, 사법, 행정의 권한을 분산해 서로 견제하도록 장치화했습니다. 권력이 집중되면 권력이 남용되고, 그렇게 되면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볼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명분 위해 또 형식과 절차 희생시키나?
압수수색영장 심문제도는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도입되는 제도입니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규칙 제정이라는 ‘꼼수’를 쓰기 보다는 국회 입법이라는 정석을 택해야 한다는 지적은 누가봐도 옳은 지적입니다.

민주주의는 비용이 많이 드는 제도입니다. 형식과 절차를 지켜야 하는 골치아픈 정치제도입니다. 하지만 국민의 자유와 평등 보장이라는 대원칙을 위해 값비싼 비용 지불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아래 형식과 절차를 무시한 적이 적지 않습니다. 김학의 불법 출금이 대표적입니다. 그것이 법률적으로 무죄가 났다고 하더라도 형식과 절차를 어겼다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이나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명분을 위해 절차를 얼마나 희생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대법원이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비켜가면서까지 도입하려는 '압수수색영장 심문제도'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행여 한 개인의 업적을 위해 급조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급할 수록 정석을 택해야 하는 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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