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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코인 태풍 긋기

등록 2023.05.15 21:51

수정 2023.05.15 21:54

도마뱀이 제 꼬리를 잘라내는 순간, 꼬리는 생선처럼 파닥거립니다. 적의 시선을 붙잡아 몸통이 도망치는 시간을 벌려는 것이지요. 그런데 꼬리는 지방과 단백질 저장고여서 비상식량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꼬리를 재생하려면 가진 에너지의 대부분을 들여야 합니다. 그러느라 성장도 생식도 멈춰, 살아도 사는 게 아닙니다. 꼬리가 되살아난다 해도 보잘 것 없어서 움직이는 데 지장이 많습니다. 수컷은 암컷에게 외면당해 짝짓기에 실패하기 일쑤입니다.

시골 하늘에 마른 천둥이 치고, 비가 퍼붓게 생겼으면 바삐 '비설거지'를 합니다. 널어둔 곡식과 빨래를 걷고 장독 뚜껑을 덮어 건사하는 것이지요. '비를 긋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췄다"는 시구처럼 '잠시 비를 피해 그치기를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참 고운 우리말이 많지요. 그러나 이 고운 말들도 정치판에 들어오면 전혀 곱지가 않습니다.

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이 '게이트급' 태풍으로 발달할 조짐을 보이자 민주당이 뒤늦게 진상조사단을 꾸린 게 지난 11일입니다. 다음 날엔 이재명 대표가 윤리감찰을 지시했지요. 급박한 사정이 느껴지면서 이 때만해도 이번에는 '뭔가 하겠지' 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민주당 쇄신 의원총회가 열리기 직전, 의혹의 장본인 김남국 의원이 탈당했습니다.

의총에서 김 의원을 추가 조사하기로 결정했다지만, 탈당한 사람을 상대로 뭘 얼마나 더 조사할 수 있겠습니까? 돈 봉투 사건과 달리 민주당이 자체 조사에 나선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코인 의혹에 좌절한 2030의 분노가 워낙 컸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자체 조사를 해보니 사태가 그리 간단치 않았던 걸까요. 결국은 송영길 전 대표처럼 김 의원이 탈당하면서 일단은 큰 짐을 덜어낸 모양새가 됐습니다.

하지만 김남국 의원은 한 술 더 떠 "민주당을 잠시 떠난다"고 했습니다. 잠시 떠났다가 큰 비 그치고 나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뜻일 겁니다. 지난 3년 사이 이런 식으로 위기를 모면해 온 민주당 의원들 처럼 말이지요.

민주당 역시 기다렸다는 듯 "김 의원의 탈당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했습니다. 속된 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고, 마치 무슨 정해진 수순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일사천리로 꼬리 자르기가 진행될 수가 있을까요?

하지만 도마뱀도 꼬리 한 번 자르면 골병이 든다는데, 매번 이러다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국민 눈을 속이려 드는 것도 어디 한 두 번이어야 말이지요.

"가을비는 장인 구레나룻 밑에서도 긋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잠깐 내리다 곧 그친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본격적인 소나기와 폭우와 장마의 계절입니다. 어디 간들, 비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 뮤지컬 포스터처럼 말입니다.

5월 15일 앵커의 시선은 '코인 태풍 긋기'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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