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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9회 말 투아웃

등록 2023.12.22 21:50

수정 2023.12.22 21:53

창덕궁 후원 주합루 앞 어수문은 전통건축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으로 꼽힙니다. 문틀 위를 휘감은 두 마리 용을 비롯해 그지없이 섬세하고 화려하지요. 문 이름은 물과 물고기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수어지교'에서 따 왔습니다.

그렇듯 물은 임금, 물고기는 신하를 뜻합니다. 문틀 위 쌍룡은 왕권의 상징 입니다. 그런데 물고기가 안 보입니다.

신하는, 문 앞 연못 부용지의 석축에 한 마리 잉어로 새겨 있습니다. 거기에다 부용지 동쪽 춘당대는 과거시험을 치렀던 곳이지요. 부용지 일대는 그렇게 잉어가 과거에 급제해 주합루에 오르는 '등용문'의 서사를 이룹니다. 중국 황하 상류 용문의 거센 물살을 잉어가 거슬러 올라 용이 된다는 설화이지요.

하지만 대부분은 떠밀려 내려온다 해서 나온 말이 '용문점액' 입니다. 용문에 이마를 부딪쳐 상처만 입고 낙방한다는 얘기인데, 대한상의가 이 말을 내년 우리 '경제 키워드'로 선정했습니다. 용의 해에 우리 경제가 용으로 승천하느냐, 이무기로 주저앉느냐는 기로에 섰다는 의미입니다.

집권당 총선 사령탑으로 추대된 한동훈 비대위원장 지명자도 험하고 좁은 문, 용문 앞에 섰습니다. 무엇보다 정당이 비상 체제를 앞세워 위기를 벗어난 예가 많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박근혜 비대위, 박근혜 정부의 김종인 비대위, 문재인 민주당 대표의 김종인 비대위, 그리고 김영삼 정부의 이회창 선대위 쯤이지요. 이 경우는 대개 대통령과 각을 세웠거나, 노선이 다른 인사를 간판으로 내세운 경우였습니다.

그 성공 공식과 한 지명자는 사뭇 다릅니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부하 검사였다는 '수어지교'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도 하지만 정치 경험도 없습니다. 직설 화법이 때로 지나치게 거칠기도 하고요. 뒤집어보면 이 모든 악조건을 무릅쓰겠다는 정면 돌파입니다. 그가 젊다는 데에 별 말이 없는 건, 적어도 중책을 맡을 만한 추진력은 다수가 인정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기성 정치에 환멸이 커 가는 것 또한 그에겐 기회입니다. 그를 대통령이 신뢰하기 때문에 더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죠.

엊그제 그는 대통령의 '아바타' 라는 말에 "누구를 맹종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는 대통령이 검찰총장이었을 때부터 "맹종하는 관계가 아니라"고 거듭 공언한 바 있습니다. 

그가 산처럼 쌓인 난제를 풀어가는 출발점은, 국민의 힘이 얼마나 암담한 처지에 빠져 있는가를 절실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하지만 직접 당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 수렁이 예상보다 훨씬 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그가 한 말 그대로 9회 말 투아웃에 투 스트라이크 상황입니다. 모호해도 휘둘러야지요. 역전 홈런을 날리는 첩경은 무엇보다 '맹종하지 않는다'는 말을 행동으로 입증하는 길이 될 겁니다. 용문에 올라 승천할 것인지, 아니면 용문에 이마를 찧고 추락할 것인지, 이제 온전히 그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12월 22일 앵커의 시선은 '9회 말 투아웃'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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