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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한동훈 티셔츠' 1992라고 쓰고, '노 피어'라고 읽는다

등록 2024.01.16 18:39

수정 2024.01.16 20:21

[취재후 Talk] '한동훈 티셔츠' 1992라고 쓰고, '노 피어'라고 읽는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2일 '1992 티셔츠'와 부산 사직구장에서 찍은 '봉다리 응원 사진' 등에 대해 부연하면서, 향후 여당이 나아갈 방향성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이날 한 위원장은 지난 10~11일 '1박2일 부산 방문' 일정 당시 코트 안에 입었던 이른바 '1992 티셔츠'와 관련, "내가 92학번이라 구입해놨던 옷"이라며 "당에서 준비한 소품이 아니라 예전에 이미 사서 가지고 있던 옷을 입고 갔던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또 '봉다리 응원 사진'과 관련해선, "내가 2020년에도 했지만, 2007~2009년에도 부산에서 근무했는데 그때 찍었던 것"이라며 "당시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제리 로이스터(Jerry Royster)'였고, 야구 인기가 상당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발언을 계속 이어가던 찰라에 갑자기 말을 끊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관련 발언을 계속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로이스터 감독까지 직접 언급하며 부연하려 했던 내용은 짐작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취재후 Talk] '한동훈 티셔츠' 1992라고 쓰고, '노 피어'라고 읽는다
/국민의힘 제공


◇롯데를 '8888577'의 늪에서 구해낸 로이스터

소제목에 있는 '8888577'은 지난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의 팀 순위를 나열한 것입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2001년 이후 4년 연속 꼴찌를 했고, 7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을 정도로 이른바 '암흑기'였습니다. 특히 2002년엔 35승 1무 97패로 승률이 0.265였고, 2003년엔 39승 3무 91패로 0.300에 머물렀습니다. 전체 133게임 가운데 40승도 거두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지난 2008년 메이저리그 출신 제리 로이스터 감독 부임 이후 '가을야구'에 매년 참가하는 중상위권 팀으로 돌변했습니다. 로이스터 감독은 취임 초부터 이른바 '노피어(No-fear)'로 대변되는, 전체적으로 팀이 융화(融和)된 가운데 두려움 없이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야구를 강조했습니다.

투수가 홈런을 맞거나 타자가 삼진 아웃을 당하더라고 절대 고개 숙이지 말고, 그 자리에서 웃으면서 털고 일어나라고 했던 겁니다. 투수를 교체할 때도 코치가 아니라 감독인 자신이 직접 올라가, 선수의 어깨를 툭툭 치고 토닥이면서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과 경험들이 쌓이고 더해져 결국 선수들 전반에 만연해 있던 '패배 의식'과 '두려움'이 걷히게 됐고,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 집권 첫 해에 69승(승률, 0.548)을 거두며 '전체 3위'로 뛰어 올랐습니다. 이듬해에도 66승을 거둬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그 다음해인 2010년에도 69승을 거둬 선두권을 위협하는 중상위권의 지위를 공고히 했습니다.

화끈한 공격 야구에 승리까지 더해지자 당시 한 위원장을 비롯한 부산의 야구팬들은 사직구장에서 머리에 '봉다리'를 쓰고 롯데를 응원했습니다. 그 결과 2007년엔 연간 관중이 75만9513명에 불과했는데, 로이스터 부임 직후 2배 가까운 수치(137만9735명)로 늘어났습니다. 2009년엔 138만18명으로 소폭 늘었고, 2010년에도 117만5665명으로 전체 8개 구단 가운데 1위를 기록했습니다.

성적이 나오지 않았고, 그로 인해 열성 관중들 마저도 야구장을 찾지 않도록 만든 이른바 '암흑기'를 완전히 벗어났던 것입니다. 로이스터 감독이 물러난 이후에도 2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등 '노 피어'는 롯데 야구의 핵심 DNA로 자리 잡았습니다.

 

[취재후 Talk] '한동훈 티셔츠' 1992라고 쓰고, '노 피어'라고 읽는다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캡처


◇한동훈, '로이스터' 언급한 저의는?

한 위원장이 과거 사직구장 방문 상황을 설명하면서 굳이 "당시 로이스터 감독이었다"고 언급한 것은, 아마도 국민의힘 수도권 지역 전반에 만연한 '패배 의식'을 걷어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서울 강남권 지역을 제외하고, 그 외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국민의힘 예비후보 분들은 대부분 자신의 지역을 '험지(險地)'라고 칭합니다. 현역 의원이 민주당 소속이고, 여론조사를 돌려봐도 오차 범위 이상으로 지고있다면서 말이죠.

그런데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상황만 놓고 보면, 상당수의 지역은 그들이 주장하는 '험지'가 아니었습니다. 자당의 윤석열 후보나 오세훈-김은혜-유정복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나타난 지역이 과반 이상이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압승을 거뒀던 지난 2007년과 2008년 선거 결과를 굳이 언급할 것도 없이 말입니다.

이와 같은 결과와 이유 등으로 볼 때 '험지'라는 표현은 맞지도 않는 데다, 나아가 지역 유권자들을 무시하거나 폄하(貶下)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질 여지도 있습니다. 스스로를 반성하기 보다 유권자를 탓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할 표현인 것이죠.

◇국민을 '노 피어' 하지 말고, 여론조사를 '노 피어'하라

지금 국민의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현재 여론조사 수치에 기반한 '승패 예측'을 두려워 하는 게 아닌, 국민을 두려워하는 모습입니다. 바꿔 말하면 국민 무서운 것(fear)을 알고, 민심에 기반한 정치를 해야한다는 것이죠. 한 위원장도 이 부분에 공감하기 때문에,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굳이 언급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롯데는 2008년 2월 말, 정규 시즌 시범경기에 앞선 기아 타이거즈와의 연습 경기에서 2연패 했습니다. 하지만 3월에 시작된 시범경기에선 5할 이상의 승률을 거두며 돌풍을 예고했고, 개막 직후부터 5할 이상의 승률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로이스터 감독은 재계약엔 실패했습니다. 지난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게 먼저 2승을 거뒀으나, 이후 경기에서 내리 3번을 내준 것에 대한 책임을 문 것이죠. 구단에서 '체질 개선'에는 성공했지만, 본선인 '가을야구 성적'을 문제 삼아 '이별'을 통보한 것입니다.

한 위원장은 여론조사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보고 체계도 수술에 들어갔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보안 등의 이유로 여의도연구원장이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수치 하나하나가 모두 당의 전략으로 직결될 수 있는 만큼, 여연에서 생산되는 모든 데이터는 원장이 보고하는 것으로 관련 규정을 바꿨다"고 전했습니다.

패배의 두려움을 씻어내는 '노 피어'에 더해, 당 요소요소에 효율성과 효과성이 떨어지는 허점과 구멍(tear)을 메우는 '노 티어(No-tear)' 전략까지 구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인데요.

사전 계획 여부까지는 알 수 없지만 롯데의 마지막 우승 년도인 '1992'와 'No-fear'의 대명사격인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을 소환한 한 위원장. 과연 '국민의힘 체질 개선'에 성공해 '재계약 가능한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을까요?

/백대우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부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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