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전체

[취재후 Talk] '의대 증원' 둘러싼 의협의 복잡한 속내…2020년 총파업 때와 다른 '현실적 고민'

등록 2024.01.20 18:37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진심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대 입학정원 확대 논의 등을 위해 지난해 1월부터 1년간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25번이나 마주 앉았다.

하지만 의사협회의 공식 입장은 의대 증원으로는 필수·지역 의료 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 인력 재배치와 필수·지역의료 유입 방안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의대 증원을 해도 피부과 등 인기 있는 과에 더 몰릴 뿐, 흉부외과나 소아과 등 인기 없는 필수과는 여전히 기피할 것이라는 게 의협의 일관된 반대 논리였다.

그러자 정부가 내민 카드는 의대 증원만 하는게 아니라, 붕괴되는 필수와 지역 의료에도 의사 인력이 충분히 유입될 수 있는 정책 패키지도 함께 내놓겠다는 것이다.

의대 증원과 함께 필수 의료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여러 대책이 함께 진행된다면 의협의 논리는 아무래도 약해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협은 최근까지 의대 증원은 결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의사 회원들의 반대 여론도 매우 높다.

서울시의사회가 벌인 설문조사에서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회원 응답률이 76.8%로 매우 높았다.

예비 의사인 의대생들의 반대 여론도 높다.

취재 결과 최근 전국 의과대학 학생협회는 각 의대 학생대표와의 온라인 논의 끝에 정부의 일방적 의대 증원 강행시 올해 1학기 동맹 휴학 등 단체행동을 하기로 잠정 의견수렴을 했다.

물론 의과대학 전체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는 절차 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의협 내부에서 '의대 증원 결사 반대'에서 한 발 물러서는 기류 변화도 감지됐다. 그 미묘한 기류 변화와 내부 갈등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기득권 지키기' 비판에도 의대 증원 반대한 의협

의사협회는 17년째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입학인원' 증원을 반대하면서 임금 하락 등을 막기 위한 '의사 기득권 지키기'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사실 기득권은 의사들만 있는 게 아니다. 약사, 변호사도 다 마찬가지다.

변호사협회는 지금도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지나치게 높다고 합격률을 낮출 것을 법무부에 요구하고 있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50%라서 변호사시험에 붙기 위한 파행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로스쿨 교육을 생각하면 합격률을 낮추라는 것도 '변호사 기득권' 지키기에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처럼 거의 절대 다수의 이익단체들은 내부 이익과 기득권을 생각할 뿐,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

의료현안협의체 협상에 나서고 있는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취재진에게 "의협이 의사의 입장이 아닌,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이상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이다.

이익단체는 국민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이익단체 회원의 이익을 사수하기 위해 모인 것이기에, 여러 주장을 할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여러 이익단체와 소비자 등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서 어떤 정책이 최선의 정책인지를 고민하고, 여러 직역 간 갈등을 조정하는 책무가 있을 뿐이다.

■투쟁 노선을 둘러싼 의협의 고민

이익단체인 의협 입장에서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의대 입학 정원 확대를 막아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필수·지역 의료 붕괴를 의대 증원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대의 명분적 측면과 의사 기득권 지키기라는 이해관계적 측면 모두 존재한다.

의협은 최근까지 '의대 증원' 절대 반대라는 입장으로 정부와 협상에 임했다. 하지만 최근 의협 내부 사정을 보면 상당히 복잡한 속내를 읽을 수 있다.

현재 의협과 의료계 내부는 강경파가 다수다.

강경파에는 최대집 전 의협 회장을 포함해 지역의사회, 의협 대의원 다수를 구성한다. 최대집 전 회장은 2020년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총파업을 주도해 정부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이렇게 총파업 등 강경책으로 의대 증원을 막아낸 승리의 기억이 있다보니 최 전 회장을 비롯한 강경파들이 의사 회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원래 정당이나 집단 내부에서도 강경파가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강경파들이 내세우는 주장 자체가 시원시원하기도 하고, 타협보다는 투쟁을 선택하는 노선이 내부를 강하게 단결시키기 때문이다.

설령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외부의 적에 불만을 표출하면 그만이다.

■2020년때와 너무나도 다른 '현재의 상황'

하지만 의협 내부 강경파의 희망과 다르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단 2020년과 상황이 너무 다르다.

2020년에는 미증유의 위기인 코로나19 사태가 온 나라를 덮쳤다.

수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입원하지도 못하고 죽어나갔다.

의대 증원 논의보다 더 시급한 건 코로나19 팬데믹을 빨리 끝내고,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였다.

당시 의사들이 총파업을 하자, 급해지는 건 정부였다. 환자의 생명이 죽어가는데 의대 증원 같은 거시적인 논쟁보다는 생명을 살리자는 주장이 더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2020년에는 공공의대 이슈가 있어서 당시 야당인 미래통합당을 비롯해 국민들 사이에서 반감도 컸다.

공공의대가 의대 증원보다 더 부각이 되면서, 공공의대 반대로 인해 파업의 명분도 있었다.

당시 공공의대생 입학 추전을 시민단체가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선발 불공정 논란이 크게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 역린인 '입시 공정성'에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이처럼 의료계의 파업이 명분이 있었고, 코로나19 같은 시대적 상황도 의협을 도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공공의대를 정부에서 더 이상 추진하지 않고 있다.

거기에다 코로나19 팬데믹도 끝났다. 2020년에 의정 간 체결한 9.4 의정합의체도 코로나19 상황이 안정이 되면 다시 공공의대 신설이나 의대정원 문제 등을 논의하자고 했을 뿐, 완전히 논의가 중단된 게 아니었다.

이제 코로나19 상황이 안정세에 접어들었으니 다시 의대 증원을 논의하자는 정부의 주장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다.

거기에다 국민 절대 다수가 의대 증원을 원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민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9.3%는 '의대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러다 보니 명분과 여론 등 여러 면에서 의사단체들이 2020년과 달리 매우 불리한 국면에 놓여있다.

객관적 정세에 있어서 의사단체가 지금 수세에 몰려있는 것은 분명하다.

■전면 총파업이 가져올 파장과 리스크

이런 상황에서 의사협회가 취할 수 있는 투쟁 노선은 크게 두 가지다. 전면 투쟁과 전면 총파업과 같은 2020년 방식이다. 의료현안협의체도 박차고 나가고, 정부의 발표를 대비해 총파업을 사실상 준비하는 방식이다.

2020년 방식은 의료계 내부를 단결시킨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높다.

전면 투쟁은 정부와 완전히 대립각을 세운다는 것인데, 그렇게 될 경우 정부는 의협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의대 증원 폭을 3000명 이상 대폭 늘리는 강경책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의대 증원 폭이 당장 내년부터 2000명, 3000명이 되면 지금 의대 입학정원 3000명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나는 것이기에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을 의협이 법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는 야당을 설득하는 방법이 있는데, 야당도 정부의 의대 증원안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편이다.

거기에다 이재명 대표의 서울대병원 헬기 이송을 놓고 지역 의료계 대다수가 비판적 입장문을 냈기에 더더욱 야당이 의협을 도와줄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의료계가 총파업으로 실력 행사를 할 수 있는데 총파업 여론이 좋지 않은 데다, 총파업을 강행할 경우 정부도 더 강경 카드를 쓸 수 있다.

바로 '전공의 업무 개시 명령'이다.

전공의들이 파업에 동참할 경우,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업무 개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때 파업 참여 의사들이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의료법 위반 등으로 정부가 고발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검찰의 기소를 피하기 어렵고,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의사 면허가 취소되는 걸 감수하면서 파업을 하는 '간 큰 의사'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의사 면허를 따기 위해 초·중·고등학교 때 수년간 열심히 공부하고, 전공의가 되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었는데 파업 참여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의사협회가 겁을 내는 건 윤석열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충분히 그런 강경책을 펼 수 있다는 점이다.

선례도 있다. 2022년에 민주노총 화물노조 총파업 때도 국토부가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업무복귀 명령 이후 대다수의 근로자들이 업무에 복귀하면서, 화물노조의 파업 전열이 흐트러졌고 결국 화물노조는 파업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화물노조의 강경책이 불러온 참사였다. 이때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5~10%p 수직 상승했다.

의대 총파업이 현실화되면 총선을 앞두고 모든 이슈의 블랙홀이 '의대 증원'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이럴 경우 의대 증원에 찬성하고, 총파업에 부정적인 국민들은 뚝심있게 의대 증원을 밀고 나가는 정부여당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주요 병원들을 중심으로 의료대란이 벌어지면 정부를 비판하기보다 파업에 동참한 전공의에게 화살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20년과 달리 전공의들의 단체행동 목소리가 아직 들려오고 있지 않다.

전공의들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으면 의료계 총파업은 시작하기 어렵다.

■정부와의 타협? 내부의 거센 반발 불가피

두 번째로 의협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정부와의 최소한의 타협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타협은 정부의 의대 증원 규모 폭을 최소화하기 위해 처음부터 증원 규모를 매우 적게 시작하는 것이다.

2000년 의약 분업 당시 감축됐던 350명부터 천천히 늘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의대 증원에 따른 효과를 최대한 늦출 수 있고, 시간도 벌 수 있다. 어파치 의사가 완전히 배출되는 데에는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의대 증원 반대'를 외치거나 심지어 '단계적 감축'을 주장하는 의협 구성원들에게 지지를 받기 어렵다.

이것이 의협이 갖는 딜레마이다.

의대 증원 '0명'으로 밀어붙이자니 정부의 강한 의지가 그대로 관철될까봐 두렵다. 그렇다고 최소한의 단계적 증원이나 '3년 평가'를 통해 타협을 시도하는 것은 내부의 저항이 크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어떻게든 향후 10년간 수천명 규모의 의대 증원 확대만큼은 막아야 하는 의협으로서는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한 달이 최대 고비…정부의 타협案 나올까?

결국 정부가 의협과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을 하고 의대 증원 규모를 발표할 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지금 언론에 나오는 대로 당장 내년부터 2000명 증원하고, 계속 3000명씩 해마다 늘어나게 되면 의협은 최악의 성적표를 받게 된다.

반대로 의대 증원 규모가 수백명대 선에 그치면 증원 속도를 늦췄다는 소기의 성과는 있지만 증원을 막지 못했다는 내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제 앞으로 한 달이 고비다. 정부가 설 연휴 후 증원 규모 폭을 발표할 계획인데, 의협의 입장을 최소한 배려하는 모양새를 취할지 아니면 정부의 의지대로 증원 폭을 크게 가져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의협 내부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국민의 마음을 얻는 '의대 증원 최종 발표안'을 내놓으려고 할 것이다.

지금 의협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시점이다. 이 어려운 시점에서 얻을 건 얻고, 내줄 것은 내주는 전략이 필요할 수 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그런 위기감과 복잡한 기류들이 지금 의협 협상단과 지도부 사이에서 형성되어 있다.

앞으로 한 달이 정말 고비고, 중요한 시점이다. 순간의 선택이 너무나도 중요해졌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