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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일기] 희정 '뒷자리'

등록 2024.02.06 18:01

수정 2024.02.06 18:07

[한 문장 일기] 희정 '뒷자리'

/포도밭출판사 제공

"2014년, 적지 않은 이들이 밀양의 패배를 걱정하던 그때 밀양 주민들은 한 문장을 가슴에 들었다. 행정대집행 1주년이 된 날이었다. 그날을 기억하고자 모인 연대자들 앞에서 밀양 주민들은 한 글자씩 새겨진 피켓을 들고 섰다. 글자를 합쳐 하나의 문장을 만들었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 '밀양을 기억한다는 것은'

싸움은 끝났다. 밀양엔 송전탑이 들어섰고,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던 주민들은 패배했다. 싸움이 달아오를 때 현장을 찾았던 사람들도 모두 손을 털고 돌아갔다. 그러나 한편에는 여전히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여기 "송전탑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기고 진다는 것이 뭘까. 상황이 종료된 뒤에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진 걸까? 그 일은 옳지 않았다고, 여전히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왜 패배일까.

'뒷자리'는 싸움이 끝난 곳에서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 가지 싸움이 또 다른 싸움으로 이어질 때 지치지 않고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이 모르는 싸움을 해 놓고도 "우리 그때 정말 잘 싸웠지?"라고 신명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고작 몇 챕터를 읽는 동안도 나는 여러 번 멈춰 서야 했다. 책 속의 사람들처럼, 커다란 것에 의해 눈앞이 가로막히는 기분이 무엇인지, 무릎이 꺾이는 무력감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게 된 탓이다. '뭘 어떻게 해도 안 되는구나. 내 힘으로는, 우리 힘으로는 안 되겠구나' 하고 절망한 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희망 없이 달리 어떻게 지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나는 다시 희망을 품었다. 절망만 보고는 살 수 없어서. 그러니 싸움을 이어 간다는 건 아흔아홉 칸의 절망을 목도하고도 한 칸 희망 쪽으로 가려는 것. 그들의 마음에 내 마음을 자꾸만 포개느라 읽는 내내 애가 탔다.

또 한 가지. 이 책은 쉽사리 '안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쓰는 사람과 쓰이는 사람 간의 낙차를 의식하며 적어 내려간 기록이다. 저자 희정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왜인지, 자기를 향해 가장 먼저 묻는다. 그는 "내가 누군가의 절박함을 글쓰기로 활용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경계심을 가지고 자신을 바라"본다.

이 문장을 읽는데 가슴이 덜컹했다. 사회부에 몸담았던 시절, 나는 누군가의 절박함을 이유로 다가가 그 절박함을 성긴 기사로 바꿔 놓은 후 황급히 거기에서 멀어지곤 했다. '쓰기 위해 접근하는' 것이 기자의 일이라지만, 누군가에게 나는 그저 "'보여주려고' 안달난 사람"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돌아가 그때의 나를 고쳐 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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