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전체

[한 문장 일기] 세계를 향한 구체적인 사랑…팀 잉골드 '조응'

등록 2024.04.05 15:09

수정 2024.04.05 19:34

[한 문장 일기] 세계를 향한 구체적인 사랑…팀 잉골드 '조응'

/가망서사 제공(예스24 캡처)

"영겁의 세월 동안 지진과 분화, 얼음과 물이 흐르며 발생한 어마어마한 힘, 극한 날씨 등을 겪으며 형성된 산의 입장에서 인간의 흔적이 미친 영향은 미미했을 것이다. 이 위대한 거물에게 자신을 정복하겠다는 위인은 잠자는 와중에 코끝에 붙은 파리처럼 조금 성가신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산은 정복되거나 길들여졌다고, 문명과 접촉하거나 인간 사회에 통합되었다고 느끼지 않는다. 누군가가 정상에 올라 황홀감에 팔을 흔들었다는 사실도 (설령 알아차렸다 해도) 금세 잊어버린다. 산은 그저 그곳에, 산으로서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 '어느 등산가의 슬픔'

동물들이 땅과 관계 맺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땅이 인간에게 속한다는 발상의 폭력성을 절감한다. 주변을 주의깊게 살피며 산책에 나선 개를 보자. 그는 땅을 위해 스스로를 준비하며, 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깊이 귀기울인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나무와 흙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다. 그들과 발맞추어 걷다 보면 알게 된다. 세계는 결코 멈춰 있지 않음을. 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되어 가는 중임을.

반면 인간은 어떤가. 땅이 계절마다 어떤 냄새를 피우는지, 누구를 품고 키워 내는지, 어떻게 사랑하고 또 투쟁하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인간이 아는 것은 다만 소유와 정복, 계측과 측량뿐이어서, 그 일방향의 낱말들 속에서 나는 종종 어지러워진다.

인류학자 팀 잉골드가 제안하는 것은 삶의 방식으로서의 '조응'이다. 그것은 단절 대신 참여를, 관찰 대신 화답을 요하며 세계의 생성에 행위로써 응답하는 일이다.

2013년부터 7년간 쓴 에세이를 엮은 이 책에서 잉골드는 어떻게 하면 "그들(세계)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규정"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그들을 위해 존재"할 수 있을지 내내 골몰한다. 예술과 건축, 인류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그의 글은 손에 만져지며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한 문장 일기] 세계를 향한 구체적인 사랑…팀 잉골드 '조응'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