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앵커칼럼 오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등록 2024.04.05 21:41

수정 2024.04.08 22:05

'한눈 좀 팔고 나자빠져 있다가,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시인이 타이릅니다. 봄이 늦기로 안달하지 말라고.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장수군 산서면에서 교편을 잡았던 시인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는 꽃으로 봄을 노래했습니다.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 피고…'

꽃이 피는 순서가, 봄이 오는 순서입니다. 그래서 '춘서(春序)'라고 하지요.

'봄바람에 뜰의 매화 맨 먼저 피고, 앵두꽃 살구꽃, 복숭아꽃 배꽃이 차례로 피네.' 

봄꽃이 일찍 피는가 싶더니 한눈을 파는지 늑장을 부립니다. 벚꽃 축제를 마련했던 지자체들이 안달이 났습니다. 

"그런다고 벚꽃이 피겠어?"
"내일이 축제인데, 벚꽃이 안 피어서요."

개막일에도 벚나무가 휑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서울에는 벚꽃이 만개했습니다만 이곳 속초는 내일 4월 6일에 새로 2차 축제를 열기로 합니다. '죽을죄를 지었다'면서도 버티겠답니다.

그리고 2차 개막이 다가옵니다. 하늘을 쳐다보다 다시 무릎을 꿇습니다. 옆에서들 다그칩니다. '사고 쳐놓고 어떻게 할 거냐'고. 상춘객 비위를 맞춰 '끌어모으려는 안간힘에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위트와 유머로 버무린 읍소 때문만은 아닙니다. 선거판하고 영락없이 닮았습니다.

이번 총선은, 상식을 무너뜨리는 이상기후처럼 여러모로 획기적입니다. 1-2심 유죄를 받은 형사 피고인이 정당을 만들었습니다. 유죄 피고인과 재판 중인 피고인들이 가세했습니다.

음주운전, 전관예우쯤은 걸림돌도 아니랍니다. 전 집권당 대표는 옥중 창당과 출마를 했습니다. 허위 자료 대출도 괜찮답니다. 성적인 막말을 전방위로 쏟아낸 자칭 '궁중 에로' 전문가도 사과 한 번 해놓고 막무가내로 버팁니다.

그러는 사이 1차 선거 축제, 사전투표의 막이 올랐습니다. 2차 축제, 선거 날까지 다들 머리 조아리고 비위 맞추는 행렬이 이어지겠지요.

시인이 봄을 끌어안습니다.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민심은 하늘입니다.

4월 5일 앵커칼럼 오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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