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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칼럼 오늘] 진실의 순간

등록 2024.04.11 22:01

수정 2024.04.11 22:08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가면을 든 위선과 거짓을 누르고 진실의 여신 베리타스를 구합니다. 가난한 화가 잭이 타이타닉호 3등실 표가 걸린 도박을 벌입니다.

"좋아, 진실의 순간이군. 누군가의 인생이 변할 테지." 

'진실의 순간'은 스페인 투우 용어입니다. 투우사가 소의 급소를 찔러,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순간을 가리키지요.

헤밍웨이가 인용한 뒤로는 이런 뜻으로 쓰곤 합니다.

'결정적 순간', '현실과 맞닥뜨리는 순간'…

'첫눈에 고객을 사로잡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마케팅 용어로도 씁니다.

진실은 때로 가혹합니다. 필연적 숙명 이니까요. 

민심은 무섭게 매몰찼습니다. 헌정 사상 가장 크게 기운 여소야대를 탄생시켰습니다. 진보계열 정당이 연달아 압도적 과반을 장악한 것도 처음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5년 임기 내내 여소야대에 발이 묶이는 첫 대통령이 됐습니다.

국민의 심판은, 대통령의 국정 태도에 내린 심판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겁니다. 지방선거의 민심이 정반대로 뒤집히기까지 지난 2년,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요.

집권 여당을 '대통령 당'으로 만들려고 대표를 연달아 내몰고 주저앉혔습니다. 합당 파트너를 '국정의 적'으로 몰았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추대된 여당 비대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밖으로는 야당과 야당 대표를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을 밀어붙인 장관만 열여덟 명에 이릅니다.

친분 있는 인사들을 대거 기용했습니다. 김건희 여사 명품 백 사건을 "좀 아쉽다"고만 하고 지나가려 했습니다.

회칼 망언과 호주 대사 임명-출국도, 되레 큰소리를 치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국민이 반기던 의료개혁 호재를, 51분 동안 1만 천 자 낭독으로 퇴색시켰습니다. 국민을 가르치는 대상으로만 여기는 걸까요.

국민은 조용히 지켜보다 '진실의 순간'이 오자 한칼에 단죄했습니다. 고집과 불통, 오만과 독선이 부른 업보입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당선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라고. 강서 참패 후엔 "국민은 늘 옳다"고 했습니다.

총선이 다가오자 "낮은 자세로 국민의 아주 작은 목소리도 귀기울이겠다"고 했지요.

그리고 오늘 "국민 뜻을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여름 화로, 겨울 부채'라는 말을 생각합니다.

4월 11일 앵커칼럼 오늘 '진실의 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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