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공영방송의 자격

등록 2019.10.11 21:47

수정 2019.10.11 21:52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전쟁을 보도하는 TV 뉴스 화면입니다. 두 나라 군대를 '영국군'과 '아르헨티나군'으로 동등하게 부릅니다.

"영국군 본진이 동쪽으로 진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영국 구축함이 미사일에 격침당한 뉴스를 전하면서도 앵커의 첫 코멘트는 평소처럼 차분합니다.

"영국이 포클랜드 전쟁에서 심각한 첫 손실을 입었습니다…"

전쟁 당사자가 아니라 마치 제3국 방송 같습니다만, 영국 공영방송 BBC의 보도들입니다. 그러자 대처 총리가 발끈했습니다. "제3자처럼 보이는 냉정한 화법이 모욕적이며 국민이 분노할 일" 이라며 방송 인가 취소까지 검토했습니다.

그러나 BBC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영방송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할수록 국익에 도움이 된다"며 말이지요. BBC도 사장은 총리가 임명합니다.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이쯤에서 대한민국 공영방송 KBS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한번 돌아 봐야겠습니다. 이번 조국 사태와 관련해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KBS 사장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KBS와 검찰의 유착의혹을 밝히라고 했습니다.

유씨는 스스로를 어용지식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CEO가 나서야지요. 이건 위기상황이잖아요…"

KBS 취재팀이 정경심씨 자산관리인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검찰에게 흘렸다고 주장한 겁니다. KBS는 즉시 외부 인사를 포함한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그간의 취재과정을 조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기자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회사 수뇌부가 유시민씨의 말만 듣고 기자들을 모욕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유시민씨와 미리 짠 듯한 대책을 내놓았다고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씨는 자칭 '어용 지식인'일 뿐 방송통신위원장도, KBS 이사장도, 시청자위원장도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사장 이름을 들먹이며 으름장을 놓자 대한민국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KBS는 그들만의 일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건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영국 국민은 BBC를 아줌마 또는 빕(Beeb) 이라고 부릅니다. 애정과 신뢰가 뚝뚝 묻어나는 이 표현은 오랜 세월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방송 독립을 지켜 온 데 대한 대가로 얻어진 것입니다. 권력 주변 인물의 한 마디에 이렇게 화들짝 놀라는 일은 더 더욱 없습니다.

지금 KBS는 스스로 공영방송이라고 자부할지 몰라도 많은 국민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10월 11일 앵커의 시선은 '공영방송의 자격'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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