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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조국의 시간, 국민의 시간

  • 등록: 2021.06.02 21:52

  • 수정: 2021.06.02 22:14

 "이봐! 썩 꺼져!"

오바마 대통령이 인터뷰를 하다 말고 파리를 쫓습니다. 파리가 손등에 앉자 단숨에 때려잡아 박수를 받습니다.

지난해 부통령 후보 토론에선 펜스 부통령의 흰머리에 파리가 2분 넘게 앉아 토론을 경청했습니다. 파리는 골치 아픈 토론회를 빛낸 스타로 각광받았지요.

조국 전 장관이 예전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파리가 앞발을 싹싹 비빌 때 사과한다고 착각하지 말고… 때려잡을 때다"

딸을 특채한 어느 장관을 용서해선 안 된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랬던 조 전 장관이 9년 뒤 자신이 어떤 처지가 될지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듯 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송구합니다" 

반면 펜스 부통령 머리의 파리는 비는 게 아니라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심리학에 '벽에 붙은 파리 효과'라는 게 나오는데, 충격적 사건으로 입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심리치료 효과를 가리킵니다. 파리같이 제3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어제 나온 조국 회고록을 보면 스스로 말한 '오랜 성찰과 자숙의 시간'을 거친 것 같지가 않습니다. 거기엔 객관적 응시 대신 격앙된 감정만 들끓었습니다. '조리돌림'과 '멍석말이'로 '멸문지화'를 당해 '무간지옥'에 떨어진 '가족의 피'로 쓴다고 했습니다. 회고록이라지만 참회는 없고 억울하다는 주장만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하루 만에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입장을 냈습니다.

시작은 이렇습니다.

"이제부터 국민의 시간입니다"

회고록 제목인 '조국의 시간'에 다시 빠져 붙잡히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사과라고 하긴 했는데 국민들이 이걸 사과라고 생각할 지는 의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도 자신과 자녀 문제를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며 당사자를 슬쩍 뒤로 밀어 뒀습니다. 회고록도 '반론 요지서'라고 감쌌습니다.

이래서야 '조국의 시간'을 건너 '국민의 시간'으로 갈 수 있을지요? 

조 전 장관은 송 대표에게 또다시 "저를 밟고 전진하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회고록에 쏟아진 지지층의 열렬한 반응을 민주당이 외면하고 이른바 '조국 손절'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고심 끝에 나온 송대표의 입장문이 그 난처한 입장을 절절히 대변하는 듯 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 가운데 조 전 장관은 "책이 완판됐다" "인쇄소가 쉴 틈 없이 돌아간다" "용지가 동났다" "출판역사에 전례가 없다"는 홍보 글을 잇따라 가져다 올리고 있습니다.

6월 2일 앵커의 시선은 '조국의 시간, 국민의 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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