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허수아비! 뻔뻔스럽게도 뇌를 얻으러 왔구나! 이 부풀어오른 소 여물더미가!"
'오즈의 마법사'에서 허수아비는 "머리가 텅 비었는데 어떻게 말을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되묻습니다.
"사람들도 생각 없는 말을 많이 하지 않나요?"
선동적 연설이나 토론에 등장하는 논리의 오류에 '허수아비 논법' 이라는 게 있습니다. 17세기 영국에서 돈을 받고 거짓 법정 증언을 해주던 사람들을 '허수아비'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상대방 주장을 허깨비로 슬쩍 바꿔놓고 공격을 퍼붓는, 야비한 말싸움 기술을 가리키지요. 이를테면 "아이 혼자 길에 나다니게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그러면 집에 가둬두란 말이냐"고 받아치는 식입니다.
"너희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딴소리를 하는 '피장파장의 오류'도 있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전범들이 "승전국도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맞섰던 논리지요. 그리고 이 장면 한번 보시지요.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하시겠습니까? 측근 비리가 있으면?"
"그 윤석열 총장의 측근이 100% 확실한 '그분' 문제는…"
"A를 물으면 A를 답변하셔야죠"
"먼저 답해주시면 저도 답을 하겠습니다"
이재명 지사는 오늘 국감에서도 다양한 화법으로 방패를 세웠습니다.
"국정감사는 인사청문회가 아닙니다"
이 말은, 논의 자체를 막는 '우물에 독 풀기'에 해당합니다. 불리한 부분은 빼고 유리한 부분만 계속 강조하는 '카드 쌓기'도 여전했습니다.
"도둑질을 설계한 사람은 도둑이 맞고 공익 환수를 설계한 사람은 착한 사람입니다"
초과이익 환수 규정이 결재과정에서 삭제된 경위에 대한 그제 이 지사 답변도 문제가 됐습니다.
"삭제한 게 아니고 추가하자고 하는 일선 직원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게 팩트입니다"
이익 환수 조항을 넣는 데 반대한 사람이 이 지사 본인이라고 인정했다가, 이 발언이 배임 논란으로 번지자 "발언의 주어가 이 지사가 아니라 성남 도시개발 공사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다시 들어보면, 했던 말의 뜻을 살짝 비틀어 '반론을 모면하려는 재정의'를 닮았습니다.
"(이익 배분은 도시개발의 핵심이라) 시장님이 결재했거나 보고됐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실련은 대장동 공공 환수가 10퍼센트 밖에 안 되고 민간투자자 일곱 명이 8천5백억원을 챙겼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지사는 전혀 주눅들어 하거나 뒤로 물어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말 비틀기에 논점 흐리기, 비웃음에 때론 위협적인 발언까지 서슴치않는 화려한 화법으로 질문하는 야당 의원들을 몰아붙였습니다.
당분간 싸움의 기술에 있어선 이재명 지사를 능가할 사람을 보기 힘들 거라 내내 감탄하면서 국정감사를 지켜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머리 속으로 찬바람이 한줄기 휘익 지나갔습니다.
10월 20일 앵커의 시선은 '싸움의 기술'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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