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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매크로 예약대행 판치는데…규제는 '전무'

등록 2024.07.01 13:30

수정 2024.07.01 13:37

[취재후 Talk] 매크로 예약대행 판치는데…규제는 '전무'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개인택시 양수교육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법인택시나 화물차 등 사업용 차량을 몰아본 적 없는 사람이 택시면허를 따기 위해 꼭 받아야 하는 교육인데, 2020년 기존의 복잡한 교육절차를 5일짜리 안전교육으로 간소화해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2021년 여름 휴가 기간에 5일간의 교육을 마친 뒤 개인택시 운전자격을 획득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접근성이 좋아지니 신청자가 폭증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간 교통안전공단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교육 신청을 접수받았는데, 최근엔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안전교육을 받고 있는 한 예비 기사는 계속되는 교육 신청 실패로 길게는 2년의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절박한 사람들은 예약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예약 대행업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ID와 비밀번호로 대신 로그인해 교육을 신청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업체들은 많게는 50만원, 적게는 30만원 정도의 '성공보수'를 받아갑니다.

●"예약 성공" 노하우 강조하는 대행업체들…실상은?

예약 대행업체들은 90%대의 높은 성공률을 강조합니다. '빅데이터'로 '자체 알고리즘'을 개발해 예약 성공률을 높였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이들은 '영업비밀'이라며 어떻게 예약을 성공하는지는 공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기 위해서 대행업체 두 곳을 직접 찾아가봤습니다. 먼저 방문한 A업체는 영업팀과 법률팀까지 따로 갖춘 인증업체라며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주소지는 여러 직원이 근무하기 어려운 고시원 크기의 공유 오피스였습니다. 그마저도 관리인에게 확인해보니 실제로 입주하지 않은 채 주소만 빌린 유령 사무실이었습니다. 이어서 방문한 B업체는 대형 사무 빌딩에 주소를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호실에 올라가보니 다른 업체가 입주해 있었습니다. 이미 3년 전 방을 빼고 지금은 한 빌라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큰 규모의 사무실이나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 않았던 건데, 그건 이들의 영업비밀이 바로 매크로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매크로 예약에 점령당한 공공테니스장

택시 양수교육만큼 치열한 예약경쟁이 벌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공공테니스장 예약입니다. 기온이 낮아 시원한데다 퇴근 후라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평일 저녁시간이 가장 인기가 높습니다. 한 달에 한번씩 열리는 예약에 직접 참여해봤는데, 예약이 열리는 시간을 타이머로 확인하며 시도해봤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직접 예약을 시도하는 동시에 예약 대행업체 두 곳에도 예약을 의뢰해봤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들 역시 실패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실패 원인을 물어보니 이들은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었고, 다음에 다시 맡겨주면 개선해서 성공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자세히 캐묻자 한 업체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프로그램상 오류로 경쟁에서 진 것 같다며 알고리즘을 일부 개선해 다시 시도해보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치열한 저녁시간대 예약을 누가 성공하는건지 테니스장에 물어봤습니다. 테니스장 측은 '서버 기록을 확인해보면 예약 대부분이 예약시스템이 열린 뒤 5초 안에 끝난다'고 설명했습니다. 날짜와 시간대를 고른 뒤 이용 인원을 입력하고, 개인정보 이용 동의 버튼까지 눌러 예약을 마치는데 걸리는 시간이 5초가 안 걸렸다는 겁니다. 예약 대기열까지 고려하면 사람이 직접 입력해서는 불가능한 속도입니다. 테니스장 역시 예약에 성공한 이들이 매크로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평일 저녁시간엔 항상 보이던 사람만 보이더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매크로를 사용하는 일부 인원끼리, 그들의 프로그램끼리만 경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지자체가 관리하는 공공테니스장은 이들을 막아낼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서버엔 누가 언제 접속했고, 언제 어떤 행동을 했는지만 기록됩니다. 이용자가 예약 정보를 손으로 직접 입력했는지, 아니면 프로그램을 사용했는지 관리자가 확인하긴 어렵습니다. 충분히 의심 되지만 물증이 없어 차단할 근거가 없다는 겁니다. 예약전쟁이 지나고 나면 테니스장 관리업체엔 예약에 실패한 시민들의 민원이 쏟아진다고 합니다. 매크로 의심 예약자를 차단해달라는 요청이 대부분이지만 이렇게 해서는 평생 기회가 안 올것 같다며, 차라리 추첨제로 전환해달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선착순 예약은 '매크로간 경쟁'"…일부는 추첨제 전환

다시 개인택시 양수교육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교통안전공단은 올해부터 양수교육 신청에 추첨제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단 관계자는 "오랜시간 문제 제기가 이어진만큼 교육인원 증원 등 여러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6월 예약에선 전체 인원의 50%를 추첨으로 선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올해 말엔 100% 추첨제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물론 추첨제에 대한 우려도 많습니다. 언제 당첨될지 모르니 마구잡이로 신청한 뒤 출석하지 않는 '노쇼'가 증가할 수도 있고, 운이 없는 사람은 계속 떨어지며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추첨이 끝난 뒤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벌어질 위험도 공단이 모두 안고 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추첨제를 도입하려는 건 공단에서도 이용자들이 웃돈을 주고 매크로까지 쓰고 있는 상황이 더 큰 문제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공테니스장도 마찬가집니다. 매크로 등을 사용한 부정예약 논란이 반복되면서 강남 등 일부 지역의 테니스장들은 추첨제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인기 시간대에는 1000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리며 당첨 확률이 비현실적으로 낮아져버렸습니다. 한 테니스 동호인은 "남편과 한 달에 56번씩 추첨을 시도해오고 있는데 여태 당첨된 적이 없다"며, 사실상 코트 사용이 불가능한것 같아 취미를 바꿀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매크로라는 반칙을 사용하는 일부에 의해 정상 이용자들의 고통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매크로 예약대행 판치는데 처벌근거 없어

지난 3월 매크로와 관련한 첫 처벌 법령이 시행됐습니다. 매크로를 이용해 구매한 암표 거래를 막는 공연법 개정안입니다. 현재는 콘서트 등 공연에만 적용중이지만 오는 9월부터는 야구나 축구 등 스포츠 경기 관람권 암표 역시 처벌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실효성엔 큰 논란이 있습니다. 암표 거래가 아닌 예약 대행은 처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계정으로 예약을 대신해주는 건 현재 공연법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문체부는 매크로 예약 자체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개정할 것을 검토하고 있지만, 그 근거를 마련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분야가 좁다는 것도 처벌을 어렵게 합니다. 예약 대행업체들은 앞서 말한 택시 교육이나 테니스장 외에도 영어유치원이나 선착순 입대신청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매크로 부정 예약을 주관하는 법은 공연법 뿐, 문화 스포츠 공연이 아닌 다른 분야에는 적용할 수 없습니다. 결국 매크로 사용이나 예약대행 등에 대한 처벌은 지금도 불가능하고, 앞으로도 당분간 어려울 수 밖엔 없는 겁니다.

한 보안업체가 지난 1~2월 국내 12개 대학교 수강신청 기간에 매크로 진단을 해본 결과, 접속자의 과반수가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매크로가 많은 상위 5개 대학에선 무려 90% 이상이 매크로 접속자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안 쓰면 혼자 손해 보는, 바보가 되는 상황이 온 겁니다. 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이런 일이 벌어진건 아닐지, 실태에 대한 적극적인 점검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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