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방송화면 캡처
정치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 가정적 상황에 대한 물음이다. 벌어지지도 않은, 만약을 전제한 상황에는 주로 답변을 거부한다. 이후 벌어지는 실제 상황에 자신의 '가정을 전제로 한 답변'이 코에는 코걸이, 귀에는 귀걸이처럼 쓰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엔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덕수 권한대행을 탄핵할 경우 초래될 뒷감당에 대한 생각 말이다.
일단, 한 대행 탄핵소추 자체에 논란의 여지가 많다. ① 탄핵소추의 결정적 계기가 된 헌법재판관 임명 불응은 애초 국회 몫 재판관 추천을 미뤄온 야당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② 재판관 임명안에 대한 결재를 언제까지 해야 한다는 법적 기한이 구체적으로 없다. 최대한 빨리 해야 하는 것이 관례일 뿐이다. ③ 특히 한 대행은 여야가 합의를 해오라며 임명 재가를 보류한 것이지, 아예 거부한 것은 아니다. 야당이 탄핵안에 위반이라고 적시한 헌법 111조는 '헌법재판관을 대통령이 임명한다'라고만 돼 있다.
게다가 한 대행을 탄핵소추하면 가결 기준을 대통령 기준인 200석으로 할지, 국무총리 기준인 150석으로 할 지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때문에 민주당 주장대로 27일 본회의에서 151석을 기준으로 단독 처리한다면, 한 대행은 가처분 신청을 할 공산이 크다. 탄핵 사유의 법적 미비점도 이유로 들 것이다.
그 가처분 신청이 혹여라도 인용된다면, 그 사이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권한대행으로서 결정한 모든 사안들은 무효 처리될 수도 있다. 최 대행이 만일 야당 뜻대로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하고, 그렇게 형성된 9인 체제 헌재가 윤 대통령을 파면 처리했다면? 그런데 한 대행 탄핵이 헌재에서 기각됐다면? 나라가 두 쪽 날, 끔찍한 국가 대혼돈 사태가 벌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아직은 정치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가정적 상황'이지만 그 불길 속으로 민주당은 스스로 뛰어들고 있다.
왜 그럴까. 26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30.5%를 기록했다. 직전 조사 대비 12.9%p 상승했다. 탄핵 가결 이후 지지층이 오히려 결집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데일리안 의뢰로 23~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3명 조사,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지지도는 24%를 기록해 윤석열 정부 이후 최저점을 찍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와 비교하면 낙폭이 크지 않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갤럽 의뢰로 17~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조사,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아직 모른다'는 야당 내부의 조급함이 혼란에 빠진 국민은 외면하는, 섣부른 판단만 낳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당내에선 애초 재판관 추천 자체를 미뤄온 것이나, 한 대행이 대법관 임명을 우선 동의하도록 해 임명 권한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 놨었어야 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금이라도 한 번 숨을 고르면 된다. 이제는 가정적 상황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부터 먼저 내놓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