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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발이 미워서 아름다운 사람들

등록 2018.01.2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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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경숙은 어느 날 신문에서 사진 두 장을 오려 책상 서랍 안에 붙였습니다. 발레리나 강수진과 축구 스타 박지성의 발 사진입니다. 서랍을 열 때마다 두 사람 발에 밴 피와 땀과 눈물을 보며, 피 말리는 글쓰기의 고통을 이겨내고 싶었겠지요. 강수진의 발은 피멍과 흉터 범벅입니다. 발은 고목처럼 뒤틀렸고, 발가락은 옹이처럼 튀어나왔습니다. 발레 신발이 하루 서너 켤레 해지도록 열다섯 시간씩 연습을 하다 보니 발이 이렇게 됐습니다.

박지성의 발에는 스파이크에 찍힌 상처가 철조망처럼 기어갑니다. 게다가 평발이어서 무릎, 허리까지 다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깔창처럼 두껍게 붙은 굳은살과 근육이 대신 충격을 흡수합니다. 공이 발바닥에 하루 3천번씩 닿도록 단련한 결과입니다. 몇 년 뒤 신경숙의 서랍에 김연아의 상처투성이 발목 사진이 추가됐습니다.

신경숙은 스무 살 처녀의 발목에 어린 상처들을 보며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없다'는 김연아의 좌우명을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물집으로 경기를 포기한 정현의 발도 참혹합니다. 물집이 세 겹으로 생겨 생살까지 드러났습니다. 밝은 얼굴, 재치 있는 말 뒤에 끔찍한 고통을 감추고 있었던 겁니다. 빙상 선수 이상화의 발바닥도 물집과 굳은살로 덮여 누런빛입니다.

양말도 안 신은 맨발에 딱딱한 스케이트화를 신느라 그렇습니다. 발과 신발을 밀착시켜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기록을 내려는 안간힘입니다. 이상화를 비롯해 평창올림픽에 나가는 우리 선수 모두 신발 속에 못생긴 발을 숨기고 있겠지요. 하지만 그 발은 젊은 날의 아름다운 훈장입니다. 고통과 인내로 다져온 꿈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꿈을 평창에서 맘껏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1월 29일 앵커의 시선은 '발이 미워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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