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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정치인 정두언, 자연인 정두언

등록 2019.07.18 21:43 / 수정 2019.07.1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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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원혜영 유인태 이철… 1996년 총선에서 낙선한 전직 의원들이 이듬해 고깃집을 차렸습니다. 가게 이름은 '하로동선'. 여름 난로, 겨울 부채, 계절에 맞지 않는 쓸모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요긴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한다는, 나름의 의미를 담은 간판이었지요.

하로동선 주인들이 당번을 정해 손님들 탁자를 돌며 고기도 굽고 술 시중도 들면서 장사가 잘됐습니다. 어느 팔순 손님은 "정치하듯 식당 하면 망하고, 식당 하듯 정치하면 성공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게는 이내 한산해졌고 2년 뒤 문을 닫았습니다. 정두언 전 의원도 지난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작년에 일식당을 열었습니다. "평생 입과 펜으로 살아왔는데 그렇게 구름 속에 살다 죽으면 허망할 것"이라며 셔터맨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한때 정권 실세였던 정치인이 주차를 해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식당이 꽤 붐볐다고 합니다.

방송활동도 열심히 했지만 극심한 정치적 부침 속에 얻은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유언한대로 그가 내일 한줌 재가 돼 어머니 곁에 잠듭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핵심 참모였고 '왕의 남자'로도 불렸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형과 불화하면서 힘을 잃었고, 옥살이를 하다 무죄로 풀려나는 곡절도 겪었습니다.

권력이란 그렇게나 허망한 것입니다. 그는 서울대 다닐 때 밴드활동을 하며 대학가요제 원년 우승팀 샌드페블스와 경쟁했습니다. 의원 시절에도 음반을 넷이나 냈습니다. 그는 애초부터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형이었을지 모릅니다. 8년 전 자녀에게 남긴 이 가상 유언을 봐도 그렇습니다.

"너희는 마음이 비단결 같이 곱다. 아빠도 원래는 그랬는데 정치라는 거칠디 거친 직업 때문에 많이 상하고 나빠졌다…"

박지원 의원은 그를 기려 "친하지도 않고 이념도 달랐지만 진짜 합리적 보수 정치인이었다"고 했습니다. 건강한 보수, 인간적 보수가 절실한 시대에 그도 하로동선처럼 인내하고 준비했다면 긴요하게 할 일이 찾아왔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제는 모두 허망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7월 18일 앵커의 시선은 '정치인 정두언, 자연인 정두언'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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