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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축구경기

등록 2019.10.16 21:48 / 수정 2019.10.1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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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조용필이 노래하면 객석에서는 자동으로 비명이 터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흥겨운 '여행을 떠나요'를 불러도 평양 사람들은 석고상처럼 굳어 있습니다. 트럭 서른 대분의 장비를 싣고가 만든, 화려하고 거대한 무대 앞에서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폭탄 맞은 느낌이 될 거라고 예상했던 조용필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혀 표정이 없으니까…내가 멎는…숨이 이렇게 딱 멎는 느낌이에요"

그는 힘겨운 줄다리기 끝에 막판에야 겨우 기립박수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런 북한 관중도 열렬하게 원초적 감정을 드러내는 곳이 있습니다. 축구경기가 열리는 김일성 경기장입니다. 2005년 독일월드컵 예선 이란전에서 북한 선수가 퇴장 당하자 관중들은 병과 의자를 그라운드로 던졌습니다. 이란 선수단 버스가 분노한 북한 관중에게 이렇게 갇혀 한참이나 빠져나가지 못했지요. 당시 이란 감독은 엊그제 인터뷰에서 "목숨이 위험했다, 폭동 수준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열광적이고 일방적인 5만 관중 덕분인지 북한은 이란전 패배 후 14년째 A매치 무패 행진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어제 우리 대표팀을 불러들여 무패 기록을 하나 더 늘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관중석이 텅 빈 무관중에 무중계 무취재 무승부까지 '4무 경기' 였습니다. 북한은 이란전 때 난동으로 FIFA 징계를 받아 홈경기를 몰수당하고 태국에서 일본과 무관중 경기를 치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 관중석을 비운 것은 북한 전체주의 체제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북한은 눈 내린 백두산에서 백마를 달리는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기괴하게 엇갈리는 두 장면에 소름이 돋습니다.

우리 국민은 제3국 문자중계를 통해 어제 경기 상황을 얻어들어야 했습니다. 마치 봉화로 소식을 주고받던 조선시대처럼 말이지요. 우리 정부가 지난 2년 동안 간 쓸개 다 내주고 북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그렇게나 저자세를 보인 결과가 바로 이겁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항의는 커녕 유감스럽다는 말조차도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몽니, 어깃장보다 더 속 터지는 일은 바로 이겁니다.

10월 16일 앵커의 시선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축구경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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