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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차담차담] 딱정벌레가 도시를 뒤덮다

등록 2023.07.06 09:00 / 수정 2024.01.1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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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자동차, 이거였다고? ⑧

히틀러는 국민차 프로젝트가 국가 통제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히틀러는 1933년 집권하자 '국민(Volks)차(Wagen)' 계획을 세웠다. 경제를 살리면서 국가 통제력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노동자 계층의 환심을 사기에도 좋았다. 자동차는 여전히 부자들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아우토반은 나치가 최초가 아니다. 바이마르 공화국 때 계획이 나왔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어 공사에 들어간 구간은 몇 군데밖에 없었다. 나치 독일은 공공사업을 통해 실업률을 잡겠다는 의도로 시작했다. 총 연장 20,000㎞ 건설을 목표로 1933년부터 공사에 착수했지만, 집권 기간 3800㎞에 그쳤다. 현재 아우토반의 총 연장은 1만3200km 가량이다. 아래 사진은 공사 현장에서 첫 삽을 뜨는 히틀러.


히틀러는 아우토반과 모터스포츠도 기획했다. 특히 모터스포츠를 통해 독일의 기술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고성능 자동차 설계자들을 자주 만났다. 페르디난트 포르쉐도 있었다.

히틀러가 그렸다는 국민차 스케치. 히틀러는 어려서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 지원한 적도 있다. 실력은 별로였다고 전해지지만, 미술에 대한 관심은 평생 남아 있었다고 한다.


"1000라이히스마르크(당시 환율로 400달러) 이하일 것. 최고 속도가 시속 100km에 달할 것. 혹독한 겨울을 고려하여 실린더를 공기로 식히는 공랭식 엔진일 것. 연비는 리터당 10km 이상일 것. 일반적인 독일 가정에 맞춰 성인 2명, 어린이 3명을 태울 수 있을 것"

국민차의 제원은 아주 구체적이었다. 나서는 업체, 한 군데도 없었다. 당연했다. 요즘으로 치면 1천 원을 쥐어주며 '생선에다 쇠고기도 사오라'는 얘기였으니.

아돌프 히틀러와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깐부' 수준이었다고 한다.


진척이 없었다. 결국 히틀러는 총애하던 페르디난트를 콕 찍어 지시했다. 혈통에도 문제가 없었다. 체코인 페르디난트는 1934년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결정적으로 유대계가 아니었다.

히틀러는 국민차 뿐만 아니라 모터스포츠와 아우토반 프로젝트에서 페르디난트의 의견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히틀러의 지시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집무실을 나서면서는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현실을 모르는 미친 놈! 그런 차를 내가 어떻게 만들어?"

시제차 VW30. 1.1리터 엔진을 뒷편에 배치했다.


그래도 페르디난트였다. 1936년 프로토타입을 히틀러에 인도했다. 1.1리터 공랭식 엔진을 차량 뒷편에 장착했다. 26마력에 최고 속도는 100km였다. 연료 효율도 요구치에 근접했다. 폭스바겐 공장이 다 지어지지 않아 시제차는 다임러-벤츠가 만들었다. 양산 가격은 990라이히스마르크, 지시에 딱 들어맞았다.


1938년 출시한 폭스바겐 타입-1.


폭스바겐은 나치의 노동자조합단체 독일노동전선 산하 카데에프(KdF)가 운영했다. 공장은 정부보조금으로 지었다. 1938년 '타입-1'을 선보였다. 히틀러는 카데에프바겐(KdF-wagen)이라고 명명했다. 1939년 말까지 완전한 양산체제를 갖추려고 했다. 그럴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나치는 공장을 징발했다.

체코 타트라의 'T97'. 페르디난트가 '참고'했다고 주장한 모델이다.


히틀러는 독일인들이 많이 살았던 체코 지역에 유세를 자주 갔다. 이 때 '타트라'의 'T97'이 괜찮게 보였던 모양이다. "이런 차가 아우토반에서 달려야 한다"고 주변에 얘기했다. 페르디난트는 '참고'를 하다가 '선을 넘었다'. 외관 디자인은 겹칠 수도 있다지만, 후방엔진은 대놓고 베꼈다. 배기량만 달랐다. T97은 1.8리터였다.

폭스바겐은 23년 만에 '후방엔진 특허 침해'를 인정했다.


타트라는 1938년 폭스바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후방엔진 특허 침해 소송'이었다. 페르디난트는 '참고'를 인정했다. 전쟁이 끝난 후 속개된 법정다툼은 지리하게 흘러갔다. 1961년 폭스바겐이 300만 마르크의 합의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독일 국민차엔 체코 지분이 아주 많다.

1938년 독일에서 국민차 개발에 나섰다는 뉴욕타임스 매거진 기사.


출시 전에 별명이 붙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1938년 10월 16일자에 독일의 국민차 개발을 소개했다. 국민차를 영어식, 'The Volksauto'로 썼다. "폭스오토는 헨리 포드가 미국을 위해 한 것과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설계됐다(The Volksauto is designed to do the same thing for Germany as Henry Ford did for America)"

1947년 네덜란드에 처음 수출한 이후 1950년 미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후반부 기사의 일부다. "반짝이는 작은 딱정벌레 수천 마리가 고속도로를 뒤덮었다(motor highways with thousands and thousands of shiny little beetles)". 아우토반에서 시험주행하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1950년 수입되자 미국 소비자들은 비틀(Beetle)로 불렀다. 미국 언론에서 시작한 별명을 공식 모델명으로 쓴 것은 1967년이다.

퀴벨바겐의 엔진은 타입-1을 개량한, 1.6리터 공랭식이었다. 사막전에서 유용하게 활용했다.


폭스바겐 공장은 다목적 군용차 '퀴벨바겐' 생산기지로 쓰였다. 타입-1과 같은 엔진을 썼다. 이후 개량모델 '타입-82'에는 1.6리터 엔진을 넣었다. 공랭식이다보니 물이 귀한 사막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지원차량으로서 롬멜 장군의 연승을 도운 일등공신이었다.

독일 국민들은 '마이 카'를 꿈꾸며 우표를 붙였다.


그렇다면 독일 국민들은 국민차를 살 수 있었을까. 나치는 200장의 우표를 넣을 수 있는 카드를 주었다. 우표 한 장당 5 라이히스마르크였다. 990라이히스마르크인 타입-1을 사려면 198개의 우표가 필요했다.

'우표를 모으세요' 카데에프바겐 구입 독려 포스터.


나치는 '일주일에 1장씩'을 장려했다. 일주일에 5라이히스마르크는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4년간 우표를 사모으면 '내 차'가 생겼다. 발표 직후 예약분이 33만 대였다. 그런데 1년도 안 돼 전쟁이 터졌다. 저축했던 돈은 어디로 갔을까. 퀴벨바겐 제작에 모두 쓰였다. 우표에 담긴 소망은 산산조각났다.

비틀이 1500만7034대 생산을 달성한 1972년 2월 17일, 대대적인 축하 행사가 열렸다. 포드의 모델-T를 제치고 당시로서는 전 세계에서 누적 판매량이 가장 많은 모델이었다.


디자인으로 엄밀히 따지면 무당벌레(Ladybird)에 가깝지만, 딱정벌레(Beetle)로 소개된 이후 '비틀'이란 별명이 더 알려졌다. 이 별명이 독일로 역수입돼 정식 명칭으로 쓰였다. 사진은 1956년형 모델이다


폭스바겐은 전쟁이 끝난 1946년부터 비틀을 본격 생산했다. 1972년 2월 17일, 1500만7034대를 생산했다. 대대적인 축하 행사가 열렸다. 당시 기준으로, 모델-T의 누적 판매량 기록을 넘어섰다.

형형색색 치장한 비틀(제일 위),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비틀(두 번째), 히피의 상징 꽃이 그려진 비틀과 마이크로버스(아래)


비틀은 히피들의 상징이었다. 1949년 첫 생산 이후 6세대 모델을 생산 중인 마이크로버스와 함께. 필요없이 크기만 했던 미국차에 비해 작고 경제적이었다. 사이키델릭한 도장을 하고서 미국 전역을 누볐다. 폭스바겐 경영진은 이걸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영상설명 : 폭스바겐은 2019년 12월 31일 비틀을 떠나보내며 '헌정 영상'을 바쳤다)


2019년 7월 멕시코 공장에서 마지막 '더 비틀'을 출고했다. 타입 1-뉴 비틀-더 비틀에 걸쳐 3세대, 82년 동안 2천만 대 이상 생산했다. 그해 12월 31일, 폭스바겐은 비틀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영상으로 기념했다.


(사진 : 위키백과, 나무위키, 위키피디아 커먼스, 폭스바겐 USA, 뉴욕타임스, 폭스바겐 코리아, 폭스바겐 AG, The Guardian, Autonews, 핀트레스트, 타트라, 포르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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