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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취재후 Talk] '김정일 러시아 생가' 목전 지나간 김정은 열차

등록 2023.09.18 13:31 / 수정 2023.09.1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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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1호 열차'가 블라디보스토크 외곽 선로를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북한은 김정일의 고향이 '백두산 밀영'이라 선전하며 이를 이른바 '백두혈통 정권'의 근거로 삼지만, 김정일의 실제 출생지는 러시아 라즈돌노예 지역의 구(舊) 소련군 야영지다.

태어난 해는 1941년이고, 어릴적 불린 이름도 러시아식인 '유라'였다. 그러나 북한은 김일성의 출생한 1912년 끝자리에 맞춰 '1942년생'이라 선전하며 '광명성절'이란 명절(2월16일)로 기념한다.

구체적인 출생 장소를 놓고 하바롭스크 뱌츠코예 마을의 이른바 'A야영'이란 설도 있었으나, 여러 고증 과정을 거쳐 현재는 라즈돌노예역 인근의 'B야영'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야영지는 당시 아버지 김일성이 소속된 소련군 88여단이 묵던 곳이다.

몇 해 전 '김정일의 진짜 생가'에 다녀온 적 있다. 1930년대 고려인 강제이주의 첫 출발지란 역사적 아픔을 가진 라즈돌노예역에서 몇 분만 걸으면 붉은 벽돌 건물이 나온다. 한쪽 벽엔 '88번지'란 주소 표지가 붙어있는데, 소련군 '88여단'과 같은 숫자다.

김정일 실제 생가'로 알려진 러시아 연해주 라즈돌노예 지역 건물.


북한은 '가짜 출생지'인 백두산 밀영을 이른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란 이름의 성지(聖地)로 만들었지만, '진짜 성지'인 벽돌집은 평범한 러시아인들이 거주하고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한적한 시골집 그대로 모습으로 남겨져있다.

존재 자체가 정권의 부담이라 북한에선 이곳을 철저히 외면한다. 1912년 지어진 건물 2개동은 상당히 낡은 모습이었고, 12가구 정도가 살고 있었다. 김정일 출생 당시 탯줄을 자른 조산원 엘냐 씨의 과거 증언에 따르면, 2층 동쪽 제일 끝집이 생가라고 한다.

건물 앞에서 만난 러시아인 나댜 씨에게 역사적 배경을 아느냐고 물어보니 "북한 지도자가 과거 젊은 시절 살았고, 그의 아들이 태어났다는 얘기를 어르신들로부터 들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국내에선 이미 '김정일 생가'로 널리 알려지다보니,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단체로 버스를 타고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이를 숨겨야 할 북한에선 '흑역사'로 철저히 외면 당한 '사적지'에 한국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아이러니다.

요즘은 '등록기준지'란 개념으로 바뀌었지만, 한국의 통념상 본적(本籍)이라 하면 보통 '아버지의 고향'을 일컫는다. 북한은 '김정은의 본적'을 백두산 밀영이라 주장하지만, 실제 본적은 '라즈돌노예 88번지'가 정확하다.


김정일이 태어난 건물 2층에 올라가면 창밖으로 멀리 철길이 보인다. 지도로 측정한 직선 거리는 150m다. 하산이나 우수리스크 등에서 열차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철길이다.

'김정은 1호 열차'가 16일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인 아르툼-1역에 도착했다가 17일 북한으로 떠났다고 한다. 경로상 16일에 라즈돌노예역을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마음만 먹었다면 차창밖 150m 거리의 '아버지 생가' 건물을 볼 수도 있었을 테다.

4년 전 블라디보스토크에 방문했을 때도 열차가 같은 곳을 지나쳤으니, 최소 두 차례 아버지 고향집을 지근거리에 두고 조우한 셈이다. 특히 올해는 추석 명절도 목전에 뒀으니,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지도자의 '본적'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 하겠지만, '혈통'과 '출신성분'을 최우선 국정가치로 내건 북한에선 '김정일의 출생지'가 정권의 '정체성'이자 '목표' 그 자체다. 할아버지가 소련군 장교 시절 머물렀고 아버지가 태어난 집을 그가 이참에 비공개로라도 한 번 들렀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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