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내 아픔을 알아…"
'작은 아씨들'의 큰언니 조에게, 바에르 교수가 괴테의 시를 들려줍니다. 괴테 소설에서 여인 미농이, 연모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과 괴로움, 외로움을 담아 노래하지요.
늦가을 잿빛 하늘처럼 슬픈 노랫말에 끌려 슈베르트, 슈만, 베토벤이 곡을 붙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절절하게 아름다운 것이 차이콥스키 곡입니다.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내 아픔을 알아…"
보름 전만 해도 덥다가 이제 가을이 오나 했더니 이른 첫눈이 날렸습니다. 올해도 가을은 문득 왔다 쏜살같이 달아납니다. 언제부턴가 가을은 늘 그런 계절이 되었지요?
스산한 저녁, 시인이 한숨짓습니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마른 풀처럼 서걱거리며 사위어가는 계절에 쓸쓸한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습니다. 대학로 연극의 성지, 소극장 학전이 돌아오는 봄 33년 만에 문을 닫는 답니다. 학전은 김민기의 다른 이름입니다. 암울한 시대 '아침 이슬'로 빛을 노래했던 '저항 가요의 전설'이 연출가, 문화운동가로 거듭난 곳이지요.
엄혹했던 시절 그는 핍박의 서슬을 피해 농사꾼, 광부, 잡부로 떠돌았습니다. 이윽고 세상이 열리고 그가 음반을 팔아 소극장을 마련하면서 붙인 이름이 배울 학(學), 밭 전(田) '배움의 밭' 입니다.
그리고 이 못자리에서 한국 문화예술의 인재들이 자라났고 큰 무대에서 큰 별이 숱합니다. 얼른 꼽아도 '독수리 오형제'로 불린 황정민, 김윤석, 설경구, 장현성, 조승우와 가수 김광석, 나윤선, 윤도현이 있습니다.
한없이 불어난 빚을 꺼준 건 김광석 콘서트 였습니다. 천 회를 공연하도록 관객이 밀려 들어 복도 문짝까지 떼어내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아이돌에게 밀려난 통기타 가수들에게 무대를 내주면서 학전은 라이브 콘서트 문화의 발원지가 됐습니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김민기와 학전의 간판이자 스타의 산실 이었습니다. 파업도 고장도 없이 4천2백 회를 달리며 73만 관객을 실어 날랐습니다. 하지만 돈이 안 되는 어린이극을 줄기차게 올리면서 살림에 그만 멍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내 팔자" 라며 견디다 이제는 바닥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건강까지 나빠져 급기야는 지하철을 세우기에 이르렀지요.
구도의 시인 릴케에게 가을은 '떨어지는 계절' 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진다. 무거운 대지가 모든 별들로부터 고독 속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그 낙하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떨어짐을 한없이 부드럽게 두 손으로 받아내는 어느 한 분이 있다.'
바로 신의 손입니다. 소멸은 그렇듯 소생의 시작 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또 다시 만나게 될는지. 잘 가시오 친구여 부디 안녕히…"
11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가을, 그리움'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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