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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다리 잃은 전사, 차관 되다

등록 2023.12.08 21:49 / 수정 2023.12.0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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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임금이 일등 공신 장만에게 하사한 초상화입니다. 그런데 시커먼 안대가 한쪽 눈을 가렸습니다. 그가 이괄의 난을 평정할 때 실명하면서 얻은 영광의 징표입니다. 일생을 외침과 내란 수습에 바치며 다진 강인한 얼굴에 화룡점정입니다.

이스라엘 구국의 전쟁영웅, 모세 다얀의 안대도 그렇습니다. 그는 "조준하고 쏘려면 눈 한쪽과 쓸 만한 손가락 하나면 된다"고 했지요. 아프간전쟁에서 한 눈을 잃은 댄 크렌쇼 미 하원의원의 안대 역시 용기와 헌신의 표상입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건 상이용사들은 좌절과 고난의 세월을 살아야 했지요.

제 어릴 적도 그분들의 갈고리와 의족이 그리 밝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그래도 소설가 하근찬은 희망을 말했습니다. 징용에 끌려갔다 한쪽 팔을 잃은 아버지가 6·25 전쟁에서 돌아오는 아들을 마중 나갑니다. 함께할 저녁거리로 고등어 한 손을 사지요. 그런데 아들은 한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업고, 아들은 고등어를 들고 외나무다리를 건넙니다.

"희완아! 정신차려!"

참수리호 윤양하 정장이 적탄에 숨지자, 이희완 중위가 두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전투를 지휘합니다.

"정장님, 지휘권 인수받겠습니다."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 이희완 대령이 보훈부 차관에 임명됐습니다.

한쪽 다리를 잃은 전사는 이제 모든 호국 영웅을 위해 뛰는 새 출발선에 섰습니다. "그분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왜곡된 시선에 상처받지 않도록 챙기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연평 용사들은 끊임없이 상처받았습니다. 특정 세력은 "과잉 대응해서 북이 도발했다, 승전이 아니라 패전"이라고 모독했습니다. 여섯 순국 영웅을 추모하는 해상 위령제는 3년 만에야 열렸습니다.

전사 일시와 장소만 한 줄 새겼던 묘비에 해전과 순국, 수훈 기록을 넣는 데 8년이 걸렸습니다. '서해교전' 이라는 이름은 이명박 정부 들어 '제2연평해전'이 됐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처음 승전기념식을 열었습니다. '서로 전쟁을 했다'는 '교전'이 '승전'이 되기까지 20년이 걸렸습니다.

시인의 아버지는 6·25 상이용사 였습니다. 목수였던 아버지를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는 게 아들은 가슴 아팠습니다. 아버지가 대패질을 하시던 창가에 단풍나무 씨앗이 내렸습니다.

'날개 하나가 우리 아버지 전장에 묻힌 오른팔은 아닌지. 외팔 빈 소매가 당신 날개였음을…'

나라 위해 전쟁의 상처를 짊어진 분들이 소외되는 나라는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상이용사가 대령에서 차관으로 도약한 것만으로도 그분들에겐 작지 않은 위안이겠지요.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던 이희완의 '마라톤 의족'이, 보훈 입국을 든든하게 떠받치는 버팀목 하나가 돼주리라 믿습니다.

12월 8일 앵커의 시선은 '다리 잃은 전사, 차관 되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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