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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애들이 커서 아버지 나이가 됐지만"…묘비마다 서린 '광주의 슬픔'

등록 2024.05.18 19:01 / 수정 2024.05.1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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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해마다 그 날을 기억하는 기념식이 열리고 올해는 오월 광주를 지켜낸 학생 희생자들이 조명됐습니다. 세월이 흘러 부모 나이가 됐을 희생자들 생각에 유족들은 가슴이 미어집니다.

묘비마다 서린 광주의 슬픔을 김달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기념탑 주변으로 하얗게 핀 이팝나무 꽃. 5.18 당시 시민들이 나눠주던 주먹밥과 닮아 오월 영령의 상징이 됐습니다.

이 이팝나무가 만개했을 44년 전, 신학대학에 다니넌 류동운 열사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광주에 왔다가 항쟁에 뛰어들었습니다.

계엄군에 붙잡혀 가혹행위를 당하고 풀려났지만, '병든 역사를 위해, 한줌의 재로'라는 글을 남기고 금남로로 돌아갔습니다.

류동인 / 고 류동운 열사 동생
"아버지가 형님을 잡았는데 '왜 다른 자식들 보고는 (항쟁을) 말씀하시면서 당신 자식만 잡냐' 그래서 아버지가 형을 못 잡았어요."

부상자를 위한 헌혈에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가다 계엄군의 총격에 숨진 박금희 열사의 삶도 조명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열사의 사진이 사용돼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희생자들의 묘비 앞은 유족들의 눈물로 얼룩졌습니다.

남편의 시신을 3개월 뒤에 찾은 송귀숙 씨는 44년이라는 모진 세월 앞에 그만 엎드려 오열합니다.

송귀숙 / 고 최열락씨 부인
"총을 제일 많이 맞은 사람이 우리 애들 아빠에요. 애들하고 못 키워서 힘들어서 도와주는 것도 없고 정부에서, 제가 서울로가…."

시신조차 찾지 못한 최정자 씨는 그리움과 함께 남편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최정자 / 행방불명자 부인
"안 간데가 없어요. 어디서 찾겠어요? 44년이나 지났는데 애들이 커 아버지 나이가 돼버렸네요."

광주의 상처는 44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다 아물지 않았습니다.

TV조선 김달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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