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사회

[앵커칼럼 오늘] 신경림

등록 2024.05.23 21:52 / 수정 2024.05.23 22:32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시인 신경림의 고향, 충주 남한강가에 표지석과 시비가 서 있습니다. 사라져버린 나루터와 장터, 장돌뱅이들이 시로 살아 숨쉽니다. 들꽃과 잔돌이 되고 천치 떠돌이가 되라 합니다. 서럽도록 억센 삶들을, 그는 따스하게 보듬었습니다.

시는, 그가 다녔던 초등학교 마당에도 있습니다.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粉)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농악 패는 피폐한 농촌을 탄식하다 장터로 나섭니다. 분(憤)을 토하듯 짐짓 신명을 냅니다.

시집 '농무'는, 1980년대 민중시의 물꼬를 텄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에는 날 선 이념, 핏빛 절규가 없습니다. 잔잔한 언어와 부드러운 운율로 노래해,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정적 민중시인'이 아니라 '민중적 서정시인' 으로 불렸습니다.

삶도 그러했습니다. 몸가짐은 소탈했고 말소리는 나직했습니다. 이름이 드높아도 어깨에 힘을 주지 않았습니다. 작은 몸집에 늘 편안하게 미소 지어 '등소평' 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길 위의 시인' '우리 시대의 두보' 신경림이 70년 가까운 시업(詩業)을 접고 떠났습니다. 스무 살에 등단했던 시부터, 외롭고 여린 삶을 연민으로 바라봤습니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 노래도 가난한 젊음들에 바치는 사랑이 곡진합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는 무심하게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다시 세상에 나가라 한다면 그때는 낙타가 되겠다고 했지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그 한 줄에 '신경림 시학(詩學)'이 응축돼 있습니다.

그가 가족에게 마지막 남긴 말입니다.

"글을 안 쓰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가장 작은 말을 가지고 가장 힘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시이거든요."

5월 23일 앵커칼럼 오늘 '신경림' 이었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