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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앵커칼럼 오늘] 업어주는 사람

등록 2024.05.24 21:51 / 수정 2024.05.2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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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가셔야 합니다. 위험합니다."

참수리호 의무병 박동혁 병장은 전우들을 보살피다 파편에 쓰러졌습니다. 혼수상태로 후송돼 80일 만에 숨을 거뒀습니다. 당시 군의관이었던 의사 이봉기 씨가 뒤돌아봤습니다. '너는 반드시 살려낸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동감했다.

그러나 젊은 심장은 박동을 그쳤다. 군의관들의 가슴에도 구멍이 났다.' 의사 시인 마종기가 술회했습니다. '흰 가운이 피범벅이 되는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온갖 응급수술을 하다, 문득 숨을 거둔 환자를 발견하고 망연자실하곤 했다.'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 상위 스물다섯 개 의대는 절대 평가를 합니다. '통과''낙제'만 가립니다. 학점과 등수에 치우치면 윤리와 정서, 공감 교육이 소홀하기 때문입니다. 모험 여행, 뮤지컬 창작 같은 인성-예술 수련도 시킵니다. '가슴이 따뜻한 의사' '함께 아파하는 의사'를 키웁니다.

작년 가을 충남 아산 현대병원에 입원한 필리핀 청년이 엉엉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암으로 누운 어머니를 돌보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겁니다. 필리핀 가는 비행기 표 살 돈도 없었습니다. 박현서 원장은 두말없이 백만 원을 봉투에 넣어주며 "어서 가서 잘 모셔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고 있던 지난주,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너무 오래 걸려 죄송하다"며 백만 원과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박 원장이 눈시울을 붉히자 함께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가 편지에 썼습니다. "언제나 선생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 교감이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입니다. 작다면 작은 이야기이겠지만, 요즘이어서 더 크고 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옛날에 냇물을 업어 건네주는 직업이 있었답니다. 물가를 서성이는 이에게 넓은 등을 내주는 사람이었다지요. 병든 이를 집까지 업어다 주고 그날 품삯을 모두 내려놓고 오기도 했답니다.

'일생 남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버티고 살아서, 그가 죽었을 때 그의 몸에 깃든, 다른 이들의 체온과 맥박을 진정시키느라, 사람들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의사란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5월 24일 앵커칼럼 오늘 '업어주는 사람'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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