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사회

[앵커칼럼 오늘] 기부도 죽음도 조용히

등록 2024.06.18 21:51 / 수정 2024.06.18 23:03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맵찬 제주 바람을 뚫고, 갓 쓴 선비가 걸어갑니다. 도포 자락 날리며 걷고 또 걷습니다. 바람소리, 파도소리조차 차디 찬 세한(歲寒)의 길을 갑니다.

'서리 덮인 기러기 죽지로 그믐밤을 떠돌던 방황도, 추사체로 뻗친 길이다. 천명(天命)이 일러주는 세한행 그 길이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에서도 바람이 드센 대정마을에서 유배된 세월을 살았습니다. 한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 그 고결한 선비 정신을 거칠고 메마른 필치로 그려냈습니다.

값을 따질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 으뜸가는 걸작 문인화, 세한도입니다.

'참솔가지 몇 개로 견디고 있다. 완당이여, 붓까지 얼었던가.'

세한도를 비롯해 수많은 국가유산과 재산, 한평생 가꾼 2백만 평 숲을 국민 품에 안겨준 사업가 손창근 씨가 별세했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베풀면서도 얼굴 드러내기를 꺼렸던 그는, 마지막 가는 길도 세상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떠났습니다.

1천억 원대에 이르는 용인 석포숲을 산림청에 기부할 때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리인을 통해 절차를 밟았고, 등기 이전도 혼자서 했습니다. 산림청 직원들은 그의 얼굴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금관 문화훈장을 받을 때도 대신 자녀들을 보냈습니다. 영상 인사에서 그는 한마디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카이스트에 50억 원 상당 건물과 1억 원을 기부했을 때도, 설득 끝에 뒷모습만 공개됐습니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 소회를 밝힌 건 딱 한 번 이었습니다. 개성 부자였던 아버지 손세기 씨에 이어, 문화유산 3백 넉 점을 중앙박물관에 기증할 때였지요.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고… 나 대신 길이길이 잘 보관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그러면서 말했지요. "'손 아무개 기증' 이라고 붙여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그때 "이것 하나만은 섭섭해서 안 되겠다"며 빼놓은 작품이 '세한도'였습니다. 그리고 1년 뒤 그마저 내놓았습니다.

세한도 오른쪽 아래에 찍힌 낙관입니다. 제자 이상적에게 보내면서 장무상망(長毋相忘),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고 했습니다.

세한도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좋은 주인도 오래 잊지 말자는 당부처럼 다가옵니다.

6월 18일 앵커칼럼 오늘 '기부도 죽음도 조용히' 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